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 과정부터 납득이 안 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실무선과) 협의했고, 그 이전에 내부 비공개회의 때 그런 말씀을 더러 했다. 가볍게 논의된 적이 있다”고 했지만, 이 문제가 청와대 참모들과의 ‘가벼운 검토’만으로 불쑥 꺼낼 사안인가.
동해는 세계지도의 97%가 ‘일본해’로 표기되고 있지만 사실상 일제 강점기에 그 명칭을 강탈당한 것이다. 따라서 명칭 변경의 옳고 그름을 떠나 관련 부처 및 전문가그룹과 깊이 있는 논의를 거치고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확보하는 게 바른 순서다.
일본이 쉽게 이를 받아들일 리도 만무하다. 이 점을 몰랐거나, 알고도 먼저 꺼냈다면 외교적 상상력과 전략의 부재(不在)를 보여 주는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다. 중대한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는 동해 표기 문제를 마치 우리 과거사의 한 대목을 정리하듯 가볍게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느닷없는 동해 명칭 변경 제의는 그동안 국제사회를 상대로 동해 표기를 위해 애써 온 민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1992년부터 동해 표기를 주장해 온 우리 정부의 공식 방침과도 배치된다. 앞으로 여러 대일(對日)협상에서 일본에 악용될 소지도 크다.
동해 명칭 교체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독도 영유권과 동해 해저 지명,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와도 직간접으로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한일관계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는 이런 현안들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즉흥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익(實益)은 물론이고 역사성과 국민감정 등을 감안해 충분한 논의를 통해 풀어 가야 한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