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표정은 어둡다. 옳고 그름을 떠나 아버지뻘 되는 운전사에게 쌍욕을 해 대는 청년은 종말론을 믿지 않아도 ‘말세’를 생각나게 했다. 요즘은 세기말도 아닌데 말기적 현상이 흔하다.
연예인 커플 파경도 마찬가지다. 청순하던 이미지의 여자 연기자가 신랑에게 맞았다며 코뼈가 부러져 누워 있는 모습은 안 그래도 속고 사는 게 많은 시대에 TV 드라마마저 현실을 배반하는 것 같아 마음이 공허해진다(여자를 때리는 남자는 비겁한 미숙아다. 육체적 우위가 사라져 버린 현대 사회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영역에서나마 자신의 동물성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하나 됨을 선언한 지 며칠 만에 파경을 선언하는 초스피드, 보도진을 번갈아 불러 대며 가정 폭력이라느니 혼수 문제라느니 하며 내밀한 가정사를 공개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은 연민스러울지언정 유쾌하지는 않다.
이뿐인가. 너도 나도 복을 빌어도 모자라는 신년 시무식에 분무를 하고 기물을 부수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얼마 전 여중생 집단 폭력 동영상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요즘 사람들 중에는 내가 폭력을 휘두르면 상대방은 ‘아플 것’이라는 생각이 뇌에 입력되어 있지 않은 ‘불감’의 극단 상태인 경우가 많다.
이토록 때리고 부수는 뉴스로 연초를 맞은 때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폭력의 일상화라고나 할까.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미워하고 욕하고, 그것도 모자라 폭력을 휘두르는 심리가 생활 곳곳에 암세포처럼 번져 있다.
요즘 우리 사회 현상은 좌우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분노와 미움의 시선으로 볼 것이냐, 연민과 포용의 시선으로 볼 것이냐의 차이라고 본다.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본다는 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실용의 문제다. ‘미움’이나 증오에는 평시보다 많은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에 생활에 쏟을 에너지를 허비하게 하고 남과 나의 정신을 썩게 만든다는 게 의사들의 한결같은 경고다.
겉은 그럴듯한 말이나 논리로 포장되어 있지만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타인에 대한 미움과 증오인 경우가 많다. 작금의 사회 현상이나 삶을 이념보다는 심리의 잣대로 봐야 하는 이유다.
미움이나 증오의 감정은 극단적인 피해나 방어심리, 도에 넘치는 열등감이나 우월감, 즉 불안이나 결핍의 증거다. 이런 사람들은 (정신적) 치유의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 ‘환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만.
많은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올해에는 제발 치유하는 정치. 밝음의 정치, 관대함의 정치를 펴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격차의 그늘은 있지만, 어쨌든 먹고살 만해지지 않았는가. 정신 건강에도 신경 좀 쓰자.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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