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같은 당의 강봉균 정책위 의장은 김 의장과 당의 노선을 ‘좌파적’이라면서 “그 때문에 중산층을 한나라당에 빼앗겼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김 의장은 “짝퉁 한나라당을 만들자는 것이냐”면서 “그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한나라당으로 집결하라”고 몰아세웠다. 김 의장이 발끈한 것은 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언행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겠지만 고위 경제관료 출신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강 정책위의장은 과거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재정경제부 장관 출신의 2선 의원이다.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은 과연 뭔가. 강 정책위의장은 “(김 의장의 말대로) 한나라당과 완전히 차별화하면 민주노동당밖에 안 된다”고 했다. 결국 김 의장과 강 정책위 의장 두 사람의 주장을 종합하면 열린우리당은 ‘짝퉁 한나라당’과 ‘짝퉁 민노당’의 결합체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좋게 말하면 중도(中道)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도저도 아니라는 뜻이다. 김 의장이 자주 언급하는 ‘따뜻한 시장경제’나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한 것도 짝퉁들의 절묘한 결합 아닌가.
한때 열린우리당의 위세는 대단했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 덕에 국회 의석 과반수인 152석의 제1당으로 부상했고, 당 지지율이 50%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재·보궐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하더니 지금은 의석이 139석으로 줄었고, 지지율은 10% 내외로 주저앉았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추락했을까.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그동안 세상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식으로 개혁을 부르짖으며 이것저것 마구 까발리고 뒤집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이 절실히 바라는 생활개혁과 민생은 뒷전이었다. 북의 핵실험으로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졌는데도 북을 꾸짖기는커녕 김 의장이 개성에 가 춤판을 벌이는 등 북을 감쌌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냉전 수구세력’이라고 매도했다. 그 사이에 한나라당은 지지율이 40%를 넘을 정도로 약진했다. ‘짝퉁 한나라당’ 사람들의 얘기라도 들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김 의장은 “한나라당 세력과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대비되는 명품(신당)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당내 ‘짝퉁 한나라당’ 사람들을 뺀 나머지 세력에다 외부 명망가들을 불러 모아 합친다고 명품이 될까. 혹여 1970, 80년대 운동권식 사고방식으로 21세기 정치를 이끌겠다는 생각은 아닌지 모르겠다. 신장개업까지 갈 것 없이 지금 ‘명품 열린우리당’을 만들 수 있는 길들이 김 의장의 눈에는 안 보이는 듯하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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