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젠 김일성 미라에 머리 숙이라는 건가

  • 입력 2007년 1월 14일 22시 51분


통일부가 우리 측 방북(訪北) 인사들의 이른바 ‘북한 성지(聖地)’ 참관 문제를 북측과 협의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작년 미사일 발사 이후 훼손된 남북 간 정치적 신뢰를 복원하기 위해 이런 내용을 담은 올해 대북(對北) 정책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정 장관은 아직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지만 발상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다.

북한이 대표적 성지로 꼽는 금수산기념궁전은 김일성 생전에 주석궁으로 사용했고, 그가 사망한 후에는 방부 처리된 시신을 안치해 놓은 곳이다. 포용정책의 환상에 빠져 대북 저자세로 일관하더니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김일성의 미라에까지 고개를 숙이게 할 작정인가. 그는 수백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6·25 남침의 장본인이다.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 등 이른바 혁명 1세대가 묻힌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도 북으로선 성지다. 이곳도 6·25 전범(戰犯)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참관이 허용된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6·25전쟁이 남침임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북은 2005년 12월 제17차 남북장관급 회담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국가보안법 철폐와 함께 성지 참관을 ‘근본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남한 인사들이 줄줄이 성지를 찾도록 해 김일성·김정일 세습정권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 정부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또한 ‘남측 인민들이 김일성 주석을 이토록 흠모하고 있다’고 선전해 체제 위기를 넘기려는 의도 역시 깔려 있다. 방북 인원이 연간 10만 명에 이르니 북이 이런 생각을 가질 만하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권유한 것이나, 지난해 ‘8·15 민족대축전’ 참가를 위해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이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참배한 것도 모두 이를 위한 정지작업이다. 그런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무슨 꿍꿍이로 ‘북한 성지’ 참관을 들고 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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