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전 총리는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여파로 총리직을 물러난 이래 2년 가까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다. 이는 주로 탄핵 사태 중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보여 준 ‘안정적 국정관리 능력’ 덕이었다. 무능하고 시끄러운 아마추어 리더십에 대한 반사이익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고 전 총리는 국민의 불만과 울분을 해소해 줄 민생회복의 청사진도, 국가 정체성 수호에 몸을 던지는 감동의 리더십도 보여 주지 못했다.
지난해 5·31지방선거와 7·26 재·보궐선거 때도 ‘방관자’로 일관했다. 더욱이 북한의 핵실험 후엔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의식해 ‘가을 햇볕정책’이라는 애매한 말로 물러섬으로써 그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
무엇보다 정당 기반도 없으면서 정파 간 이합집산의 동력(動力)에 의존해 대통령 자리를 꿈꾸었던 것부터가 무리였다. 아직도 일천한 우리 정당정치의 한계를 보여 주는 예다. 이념도 정책도 불문하고, 세(勢)의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연대만 잘 하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그릇된 정치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지난 4년간의 실정(失政)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며 신당으로 옷을 바꿔 입고 정권 재창출을 하겠다고 나서는 현 여당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당정치의 본령인 책임정치를 외면함으로써 정치를 붕당(朋黨)정치의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에 순응해 고 전 총리가 출마 포기의 결단을 내린 점은 평가해야 하나 그가 빚어 낸 시행착오와 그를 부추기고 이용하려 했던 집권 세력의 정략적 기도는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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