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 떠 있다는 한 노조원의 글을 읽은 것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토론공간(아고라)에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토론공간에서는 현대차 노조가 부분파업을 결정한 지난 주말 이래 누리꾼들이 올린 ‘현대차 노조에 대한 한 말씀’들이 핫이슈다.
압도적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나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조원입니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16일 현재 조회 수 12만 건을 넘겼고 읽은 사람들의 추천 횟수도 160여 건이다.
자신이 30대 중반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라고 밝힌 이 글의 필자는 주야간 2교대로 하루 10시간씩 7일 꼬박 근무하고 연봉 4300만 원을 받는 자신의 처지가 뭇사람이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귀족 노동자요, 사람다운 생활이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이 ‘노조원’은 하루 만에 두 번째 글을 올렸다. 자신의 글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보았다는 데 당황해서였고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자신의 글에 붙은 댓글이 ‘나는 그것보다 더 일하는데도 연봉이 적다. 배불러서 하는 소리다’라며 연봉을 두고 비판하는 글이 제일 많았던 점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노조원’은 “‘어떻게 같은 노동자, 월급쟁이가 마치 사장처럼 자본가의 사고를 갖고 계신지 안타깝다”며 자신과 현대차 노조원들을 공박한 댓글들에 서운함을 토로했다.
‘뭣도 모르는 국민들’이 현대차 노사의 충돌에 끼어드는 것은 ‘이상한’ 국민성 때문은 아니다. ‘어떤 언론도 우리를 대변해 주지 않는다’며 현대차 노조원이 사이버 공간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듯이 그에 맞대고 ‘그렇게 근무가 고되면 하루 8시간 일하고 연봉 2300만 원 받는 것은 어떤가. 당신들이 조금만 희생해 준다면 고용이 늘 것이고 실업률 감소에도 한몫을 할 텐데…. 8시간 일하고도 연봉은 4500만 원을 받고 싶은 게 당신들의 욕심이라서 당신들이 욕을 먹는 것이다’라고 싸늘하게 공박하는 글을 올리는 또 다른 ‘노동자’들도 있는 것이 현실의 다면적인 모습이다. ‘현대차 노조가 왜 욕을 먹느냐고?’라는 제목의 노조원 주장을 반박하는 글 역시 16일 현재 조회 수 9만 건을 넘어섰다.
나의 삶과 일상이 생면부지의 타인, 전 세계인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현실을 두고 디지털 테크놀로지 철학자인 피에르 레비는 ‘세계인류’의 출현이라고 했다. 물밀듯이 쏟아지는 정보의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것만이 ‘세계인류’의 특징은 아니다. 열린 공간에서 수많은 시선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있거나 때로는 비춰 보기를 요구받는 것도 ‘세계인류’가 처한 새로운 삶의 조건이다.
내 거울에는 내 모습이 ‘핍박받고 왜곡 당하는 노동자’로만 비쳐도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의 거울에는 ‘내 일자리를 뺏는 이기주의자’로도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한 타인들 간의 관용과 이해, 대화는 불가능하다.
어디 현대차 노조원들에게만 향하는 조언일까.
‘지금 자신의 시각에서만 사태를 바라보지 마시고 한 걸음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지금 당신들의 모습을 지켜보십시오’라는 당부가….
정은령 사회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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