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한반도 전문가 24명을 면담한 보고서(본보 19일자 A1·4·5면 참조)를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 발언이 새삼 떠올랐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연단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노 대통령과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미국에 대한 자주’를 외치는 동안 미국의 지한파는 ‘한국은 못 믿을 나라’라며 싸늘한 냉소를 짓게 됐다는 사실이 보고서에는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보수·진보, 친(親)공화당·친민주당 등 정치적 견해와 이념적 지향에 관계없이 거의 한 목소리로 한국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피력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가까운 공화당 인사들은 임기 1년을 남겨 둔 한국의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과 관련해 어떤 길을 걷건 더는 개의치 않겠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노무현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그동안 내놓은 발언의 궤적을 보면 한국에 대한 미국 지한파의 인식이 나빠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대통령부터 ‘미국에 할 말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제일 많이 실패한 나라는 미국”, “대북 레버리지(지렛대)가 가장 강한 미국은 핵실험에 직면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등 미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문제는 미국을 자극하는 이런 발언들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언 당사자도 모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도 수시로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 전문가들은 “한미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충분한 사전 논의이며, 상호 양보와 이해”라고 조언했다. 이런 노력을 비굴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전략적 차원, 동맹국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생각하는 게 진정 국익을 생각하는 태도라고도 했다.
미국 지한파의 대한(對韓) 우려를 ‘노무현 흔들기’라고 일축하지 말고 건설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여야 한미관계도 복원하고 국익을 지킬 수 있는 것 아닌가.
하태원 정치부 taewon_h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