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대통령은 ‘선거중립 의무’ 위반 전과자나 다름없다.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했지만 “국가원수와 행정부 수반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때는 원칙적으로 정당정치적 의견 표명을 삼가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는 등의 정치적 발언이 대통령 파면 사유까지는 아닐지라도 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정치인인 대통령이 누구를 지지하든 왜 시비냐”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사전 경고마저 무시했었다. 어제 강 대표의 요구에 대한 청와대의 반박도 비슷한 강변이다.
그제 대통령의 신년 회견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임기 마지막 해의 국정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당원들을 향해 “함께 뭉쳐 가자”고 단합을 호소한 것은 물론이고 야당의 유력 대선 예비 후보를 겨냥해 “실물(實物)경제 좀 안다고 경제 잘하는 것은 아니다”고 찬물까지 끼얹었다. 황당한 일이다. 이에 앞서 23일에는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차기 주자라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예비 주자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대선 게임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이다.
대통령은 “민의(民意)는 결국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민생 국정에 전념하고, 차기 대선에는 초연하라’는 절대적 민의를 거스르고 있다.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해 초유(初有)의 탄핵 사태를 자초했던 전비(前非)를 교훈 삼기는커녕 국민의 요구를 비웃는 태도다. 언제까지 국민을 정치실험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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