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노숙해도 지킬 것은 지킨다

  • 입력 2007년 1월 29일 02시 58분


이달 초순 어느 날. 오후 10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부근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다른 지역에서 새로 온 한 노숙인이 술을 마신 뒤 노래를 부르며 행인을 괴롭힌 것.

그러자 5, 6명의 남자가 다가가 ‘주의’를 줬고 그래도 고성방가가 계속되자 그를 을지로입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어낸 뒤 다시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한 역무원은 “주의를 준 그들 역시 노숙인”이라며 “을지로입구역에 상주하는 70여 명의 노숙인이 언제부턴가 자율적인 규칙을 만들어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숙인의 취침 시간은 보통 오후 8시부터 오전 6시까지며 고성방가나 소란을 일으키면 그 자리에서 ‘퇴출’된다.

그래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거나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없고 몸이 불편한 사람이 들어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러 명이 나서서 빈 상자로 잠자리 만드는 것을 돕는다. 첫 열차가 운행을 시작하자마자 모두 곧바로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한 뒤 자리를 뜨는 것도 원칙. 이들은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상자들을 치운 뒤 무료 급식센터나 교회, 일용직 일터로 떠난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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