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조폭 경제학

  • 입력 2007년 1월 30일 20시 10분


폭력에도 미학(美學)이 있다. 영화의 경우 액션, 호러 등 폭력물 장르가 따로 있고 마카로니 웨스턴이니 홍콩 누아르니 하는 변종도 있다. 브루스 리(李小龍)와 청룽(成龍)은 홍콩 무협영화를 세계무대에 올렸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나 ‘대부’는 예술사에 기록될 걸작이다. 태국의 전통무술 무아이타이를 소재로 한 ‘옹박’ 시리즈는 와이어나 컴퓨터그래픽 없이 촬영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폭력영화나 드라마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데이비드 필립스 교수는 미래 사건을 매우 정확하게 알아맞힌다. 그중 유명한 것이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전이 미국 전역에 중계되면 4일 이내에 11명의 무고한 미국시민이 살해된다”는 예언이다. 수년 동안 열린 경기 전후의 살인 추이를 분석한 뒤 내놓은 논문 내용인데 그 후 제법 들어맞았다. 더욱 슬픈 사실은 경기 후에 살해된 사람의 유형이 경기에서 진 선수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젊은 흑인 선수가 패했으면 젊은 흑인 남자 피살자가 증가했다.

▷한국에서도 조직폭력을 미화하는 영화가 많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조폭 마누라’ ‘가문의 영광’ ‘가문의 위기’ 같은 코믹물은 현실과 쉽게 구분된다. 반면 ‘초록물고기’나 ‘친구’ 같은 정극(正劇)은 청소년들의 모방심리를 부추기기 쉽다. 이들 영화는 이권(利權) 때문에 친구를 죽인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사내답고 멋지게 묘사돼 있다. 폭력의 미학이라기보다는 ‘폭력의 미화’라고 할까.

▷조폭의 실제 생활은 결코 멋지지 않으며 잇속을 따질 뿐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수사관들도 “예나 지금이나 조폭에겐 의리란 없으며 돈 앞에서 비열할 뿐”이라고 말한다. 스티븐 레빗이라는 미국의 경제학자는 저서 ‘괴짜 경제학’에서 마약 갱단의 회계장부를 통해 조직원들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미국에선 행동대원들이 좋은 직장을 얻으면 조직을 떠나는데 ‘좋은 직장’이라는 것이 고작 잡역부 정도라 한다. 영화와 현실은 차이가 크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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