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적에 백번 공감한다. 지난 대선은 유례없는 감성 선거였다. 노무현 후보의 ‘눈물’ ‘희망돼지 저금통’ ‘기타 치는 대통령’ ‘자갈치 아지매’ 등 감성 콘텐츠가 유권자의 마음을 울렸다. 그에 비해 논리를 앞세운 이회창 후보의 콘텐츠는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심리학자 앨버트 메러비언의 연구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 중 버벌(말의 내용)의 전달력은 7%에 그친다. 나머지는 비주얼(표정 제스처·55%)이고 보컬(목소리·38%)이다. 말의 내용보다 제스처 등 감성 접근이 메시지의 설득력을 더 크게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감성 마케팅 전략도 이런 데서 비롯된다.
대선을 앞둔 좌우 진영의 감성 콘텐츠 생산력을 비교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좌파의 압도적 우세다.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지는 좌우 진영의 시위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좌파의 시위에는 록 분위기의 운동권 노래가 땅바닥을 울리고, 현란한 율동과 군중을 호령하는 함성이 울려 퍼진다. 군가나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며 극적 연출도 없는 우파의 시위 콘텐츠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좌파 진영에는 문화활동가도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옛 소련의 붕괴 이후 문화운동으로 마당을 옮긴 운동권이 적지 않은 데다 민주노동당원인 영화인과 노래패도 있다. 이달 중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민노당 의원단의 단식 농성에 영화배우 문소리 씨 등이 들러 격려한 것도 그 ‘잠재 역량’의 표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섬뜩하게 묘사한 만화도 최근 나왔다. ‘5월 광주’의 비극은 잊어선 안 될 우리 모두의 상처이지만, 사진으로도 공개된 장면들을 굳이 잔인하게 만화에 담은 이유가 궁금했다. 대선 국면에서 이런 ‘작품’이 쏟아져 나오면 우파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좌파는 전교조의 반미 교육 세례를 받은 젊은 층도 ‘잠재 예비군’으로 확보하고 있다. 주한미군 등 미국 관련 돌발 사건이 터지면 좌파 진영은 이들을 ‘일깨우기’ 위해 반미를 앞세운 감성 축제를 펼칠 것이다.
우파는 어떤가. 뉴라이트는 논리로는 대응하고 있으나, 이를 감성적으로 담아 낼 텍스트가 부족하다. 열정적인 문화활동가도 찾기 어렵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운동도 아직 멀었다. 소설가 복거일 씨가 대표를 맡은 문화미래포럼이 중도 보수를 내세우며 출범했지만 얼마나 헌신적으로 텍스트를 만들어 낼지 미지수다.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에서 좌파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이문열 씨가 외롭게 보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렇듯 감성 콘텐츠 생산력에서 우파는 한참 뒤지고 있다. 좌파의 개혁 주장에 식상한 유권자가 많다는 ‘반사 이익’이 있긴 하지만, 돌발 이슈를 기민하게 감성적으로 포장하고 조직하는 역량은 아직까진 좌파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선을 11개월이나 앞둔 지금 정치 판도의 변화에 일희일비할 것도 아닌 듯하다. 문화의 힘 때문이다.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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