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의 활약은 더 화려하다. 런던 웨스트엔드 한복판 피콕극장에서 향후 5년간 공연할 예정이다. 올해는 6일 시작돼 70일간 계속된다. 2005, 2006년 에든버러 축제에 나가 두 번 모두 1900개 출전작 중 ‘박스오피스 넘버 원’에 올랐다. 작년 말 영국왕실 주최 공연에 초청된 23개 팀 중 유일한 아시아팀이다. 공연 후 찰스 왕세자 부처(夫妻)가 출연진을 극찬해 화제가 됐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눈물겹다. 대학로의 무명 배우들은 가난하다. 결혼을 앞둔 배우는 처가 쪽에서 ‘수입이 얼마냐’고 물으면 “수백만 원”이라고 말할 뿐 그것이 ‘연 소득’임을 밝히지 못한다. 점프의 대표 프로듀서 김경훈 씨는 “이런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성공에 대한 확신이 섰습니다. 뮤지컬 배우가 무술동작을 소화해 낼지는 불분명했지만, 그것만 되면 세계무대에서 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쉽지는 않았다. 배우가 1년쯤 연습하면 뒤로 3회전 한 후 자빠지는 척하면서 날아오는 물건을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욕심을 줄이는 수밖에…. 준비에서 시연까지 3년 걸렸고 김 대표는 집을 팔아야 했다.
한계도 많다. 점프가 무언극(無言劇) 형식을 취한 것은 한국말로 진행할 경우 세계로 도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난타’도 마찬가지 고민이 있었다. ‘명성황후’의 윤호진 연출자가 “한국의 예술분야 중 산업화에 가장 유리한 것은 뮤지컬”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취지다. 대사를 없애면서 스토리 라인의 빈약은 감수해야 했다. 속상하는 얘기지만 한국어 공연의 현실이다.
김 대표의 포부는 크다. “10년 안에 대학로를 ‘아시아 공연예술의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상하이와 대학로가 가능성 높은 후보지입니다. 도쿄는 콘텐츠 자생력이 떨어져 힘들어요. 금년 중 대학로에 무료 연습공간을 열 생각입니다. 창작극 페스티벌도 곧 열고 싶습니다. 비보이의 원조는 미국이지만 최근 세계대회에서 한국인들이 연거푸 우승한 것은 우리의 독창성 때문입니다.”
문화산업은 대표적인 미래산업이다. 1992년 영화 ‘쥐라기공원’의 매출액은 8억5000만 달러로 현대자동차 150만 대를 수출한 것과 같은 금액이다. 그해 현대차의 실제 수출량은 그 절반도 안 되는 64만 대였다. 한류(韓流)가 거세다지만 톱스타 몇 명에게 의존해서는 오래 못 간다. 콘텐츠의 질이 단단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장금’도 이영애라는 명배우와 함께 문사철(文史哲)에 밝은 작가 김영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모멘텀은 고부가 서비스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문화오락서비스수지는 3억1000만 달러 적자다. 문화 레저 의료 교육 등 ‘삶의 질’ 관련 서비스의 고급화가 절실하다. 공연예술도, 한국도 이제 한 단계 점프할 때 아닌가. ‘점프 모델’이 성공하길 빌 뿐이다. ‘뚜벅 걸음’도 아름답지만 아찔한 ‘점프’ 또한 감동을 준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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