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이쑤시개 접대’

  • 입력 2007년 1월 31일 19시 58분


국회에 윤리위원회가 생긴 것은 노태우 정부 말기인 1991년 7월이었다. 민자당 남재희 의원이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이듬해 출범한 제14대 국회 4년 내내 위원장을 지낸 사람은 이종근 의원. 충북 충주 출신으로 JP와 육사 8기 동기생인 이 의원은 국회 회기 때만 서울에 올라와 딸네 집에서 지내며 의정활동을 했다. 많은 의원들이 ‘재산공개 태풍’에 당황해 자녀 명의의 재산을 숨기거나 변명하기 바쁠 때도 그는 “자식들 시집 장가갈 때 한 푼 보태 준 게 없다”며 담담해했다.

▷명색이 6선 의원이었지만 이 의원은 윤리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판공비를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대신 꼬박꼬박 모은 뒤 연말에 윤리위원들을 불러 골고루 나눠 줬다. 김영삼 정부 때만 해도 돈이 궁한 여당 의원이 드물었다. 어떤 의원들은 “몇 푼 되지도 않는데…노인네가 택시비라도 하시지 뭘 나눠준다고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그는 그래도 해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미국 민주당 의회 지도부가 공언한 의원윤리법의 윤곽이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달 중 통과될 것으로 보이는 의원윤리법을 소개하며 ‘이쑤시개 규정’이라고 불렀다. 의원들이 로비스트의 접대를 받더라도 ‘서서 이쑤시개로 먹을 수 있는 음식’ 정도만 허용했기 때문이다. 의원들을 초대해 ‘생굴 전채(前菜)’와 ‘굴 파스타’를 대접하려던 미국 수산업 로비단체도 급히 메뉴를 바꿨다. 생굴은 이쑤시개로 먹을 수 있지만 파스타는 그럴 수 없는 노릇이라.

▷미국은 워싱턴과 지역구를 오갈 때 개인 비행기를 이용하는 의원들이 많다. 비행기 자리 제공도 힘들게 됐다. 헬기는 예외. 여러 가지 제한규정이 있지만 일단 ‘고정 날개를 단 비행기’가 금지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 의회는 이번 법안을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가장 강력한 윤리규정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글쎄…. 몇해 전 고인이 됐지만 이종근 의원이라면 ‘이쑤시개 접대’도 거부했을지 모르겠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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