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동관]前職대통령

  • 입력 2007년 3월 2일 02시 56분


1992년 대선 ‘3수 도전’에 실패한 김대중(DJ) 후보는 두 진로를 놓고 고심했다. 샤를 드골의 ‘퇴장(退場)의 미학’을 벤치마킹하는 것과 지미 카터를 본받는 것이었다. 드골은 1946년 전후(戰後) 초대 프랑스 총리 자리를 내던지고 12년 동안 야인(野人)으로 지내며 때를 기다린 끝에 1958년 권좌에 복귀했고,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국제평화활동에 나섰다. DJ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영국 유학과 아태평화재단 설립(1994년)을 동시에 추진했다.

▷2003년 대통령 퇴임 후 DJ는 국제평화활동에 주력하며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카터 모델’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 후 ‘햇볕정책’ 선전의 선봉에 서더니 최근에는 범(汎)여권 통합에까지 관여하고 나섰다. 엊그제는 열린우리당 탈당파 의원들에게 “단일 통합정당을 만들거나 최소한 선거연합을 이뤄 내 단일 (대통령)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훈수했다. DJ가 올 대선에서 햇볕정책 계승자를 당선시키기 위해 ‘호남+진보좌파’를 묶는 작업에 나섰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DJ의 차남 홍업 씨가 4·25보궐선거에 전남 무안-신안에서 출마하는 것도 굳어지는 분위기다.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던 그가 아버지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거기서 출마하려는 데 대해 “호남을 호주머니 공깃돌로 아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DJ 측은 밀어붙일 태세다. 여권(與圈)이 지리멸렬하자 ‘다시 나의 때가 왔다’는 판단이 선 것인가.

▷우리 헌정사를 돌아보면 역대 대통령의 실패는 ‘퇴임 후’를 의식한 무리수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의 막대한 비(秘)자금 축재도 ‘정권 재창출’이나 ‘아들의 정치기반 마련’ 욕심에서 비롯됐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벌써부터 내비치고, 이미 전직(前職)이 된 지 만 4년이 넘은 DJ는 새삼 현실정치에 깊숙이 파고드는 형국이다. 국민이 뒷모습이라도 아름다운 대통령을 보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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