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통령 퇴임 후 DJ는 국제평화활동에 주력하며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카터 모델’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 후 ‘햇볕정책’ 선전의 선봉에 서더니 최근에는 범(汎)여권 통합에까지 관여하고 나섰다. 엊그제는 열린우리당 탈당파 의원들에게 “단일 통합정당을 만들거나 최소한 선거연합을 이뤄 내 단일 (대통령)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훈수했다. DJ가 올 대선에서 햇볕정책 계승자를 당선시키기 위해 ‘호남+진보좌파’를 묶는 작업에 나섰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DJ의 차남 홍업 씨가 4·25보궐선거에 전남 무안-신안에서 출마하는 것도 굳어지는 분위기다.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던 그가 아버지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거기서 출마하려는 데 대해 “호남을 호주머니 공깃돌로 아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DJ 측은 밀어붙일 태세다. 여권(與圈)이 지리멸렬하자 ‘다시 나의 때가 왔다’는 판단이 선 것인가.
▷우리 헌정사를 돌아보면 역대 대통령의 실패는 ‘퇴임 후’를 의식한 무리수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의 막대한 비(秘)자금 축재도 ‘정권 재창출’이나 ‘아들의 정치기반 마련’ 욕심에서 비롯됐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벌써부터 내비치고, 이미 전직(前職)이 된 지 만 4년이 넘은 DJ는 새삼 현실정치에 깊숙이 파고드는 형국이다. 국민이 뒷모습이라도 아름다운 대통령을 보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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