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광현]거꾸로 가는 과학정책

  • 입력 2007년 3월 5일 19시 33분


지난 설에 모처럼 집안 식구들이 많이 모였다. 조카들도 제법 커 중고등학생도 있고 대학생도 있었다. 마침 동아일보가 주관한 과학계-산업계 주요 인사 사이의 연속 특별대담이 진행되던 시점이라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열 명 남짓한 조카 가운데 공무원, 의사는 있었는데 과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

요즘 초등학교들 사정도 비슷하다.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연예인이 되겠다는 어린이가 절반이 넘고 과학자가 되겠다는 어린이는 한 반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라고 한다. 1960, 70년대만 해도 어린이들 사이에 과학자는 장래 희망 1, 2순위였다.

과학이 예체능보다 재미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은 재미없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3D 업종 취급을 당하고 있다.

본보는 지난달 4차례에 걸쳐 과학기술 정책 및 과학 교육에 대한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대담 순서는 △채영복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장무 서울대 총장-이구택 포스코 회장 △박찬모 포스텍(포항공대) 총장-김쌍수 ㈜LG 부회장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김신배 SK텔레콤 사장 순이었다. 한국의 과학계와 산업계의 대표선수라고 할 만한 분들이다.

이들은 일정을 분 단위로 쪼개 쓴다. 어느 대학 총장은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대담용으로 대학노트에 3페이지나 빼곡히 메모를 해 왔다. 자신이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기업의 주주총회가 코앞에 다가와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야 하는 기업인도 흔쾌히 응했다.

이번 특별대담의 직접적 계기는 교육인적자원부가 마련한 교육과정 개편안(案)이었다. 개편안은 과학과 수학 교육을 소홀히 해 과학계의 반발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과학계와 산업계 인사들은 구체적인 교육과정 개편안 못지않게 과학기술을 대하는 한국의 풍토와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는 잘못된 방법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적어도 과학기술만큼은 나눠 먹기식 평준화 정책으로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학이 학생도 자유롭게 못 뽑는 현실에 대해서는 대학 총장보다 오히려 기업인들이 더 걱정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수학을 포함한 과학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정치 지도자 대부분이 이공계 출신인 중국은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해 주면서 해외에서 우수 과학기술자를 모셔 오고 있다.

한국이 20년 뒤에도 ‘먹고살 거리’를 마련하려면 이제 자체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뛰어난 과학자와 과학에 대한 상식과 애정을 가진 국민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과학 정책, 특히 과학 교육 관련 정책들을 보노라면 세계 흐름과는 거꾸로 ‘역(逆)주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된다.

매년 10조 원 가까운 정부 예산이 연구개발(R&D)에 들어가고 있다. 현장에서는 밤늦도록 불을 밝히는 연구원들도 적지 않다. 이런 국민의 세금과 과학기술자의 땀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거꾸로 가는 과학 교육 정책’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김광현 경제부 차장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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