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애국자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라

  • 입력 2007년 3월 6일 19시 43분


아주 드문 일이었다.

아니, 취임식 직후를 빼고는 처음이었고, 아마 마지막일 것이다.

계속된 ‘편 가르기’ 발언으로 열광하는 소수와 반대하는 다수를 양산해 온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 국민의 지지와 여론의 지원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은. 노 대통령이 ‘하는 일마다 반대했다’고 비난해 온 한나라당과 이른바 ‘보수 언론’으로부터도 전폭적인 찬사가 쏟아졌다.

2004년 12월 8일 유럽 순방 후 귀국 비행기에 오른 노 대통령은 “이 비행기는 지금 서울로 못 갑니다”라는 멋진 말로 이라크 아르빌에 파병 중인 ‘자이툰부대’ 방문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고는 한 자이툰부대 사병이 “대통령님, 한번 안아 보고 싶습니다”며 품으로 뛰어드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평소 노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지지를 보내고 감동을 느낀, 그 저류에 흐른 것은 애국심이었다. 이라크까지 날아가 자이툰부대를 찾은 노 대통령에게서 국민은 참으로 오랜만에 내 편보다는 나라, 권력보다는 국익을 생각하며, 무엇보다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았다.

어쩌면 간절히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이툰부대 방문이 설혹 이벤트성이었을지라도. 당시 노 대통령이 이 점을 깨달았다면 불과 2년 뒤 “국민의 평가를 완전히 포기했다”며 자포자기하는 처지로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애국심은 통치 이데올로기가 만드는 환상’이란 얘기도 있지만 애국심이야말로 국민과 국가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통합의 끈이다. 중세 이후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서구는 이 사실을 이벤트가 아닌 생활로 체득하고 있다.

프랑스 남부의 세계적인 휴양지 니스의 해변도로를 걸어 본 적이 있다. 해변도로에 인접해 지구촌 부자들의 별장이 즐비한 언덕 편에 아름다운 대형 조각 작품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 보니 니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였다. 그 아래 제단에는 그날 갖다 놓은 듯한 싱싱한 꽃들이 한 아름 놓여 있었다.

유럽의 도시와 마을의 중심에는 거의 다 교회와 광장이 있다. 그리고 이 주변에선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그 지역 출신을 기리는 조형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파리 한가운데 세워진 개선문의 안쪽 벽에도 나폴레옹 황제와 함께 참전한 600여 명의 장군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예술로 승화된 애국심이 문화와 관광의 콘텐츠가 되고, 그게 다시 역사가 돼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윈윈’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일반인들의 발길이 뜸한 국립묘지에서, 근교의 외딴 묘역에서, 잡풀 우거진 숲 속의 위령비에서 잠자는 선열과 애국자들을 도심 광장과 저잣거리로 불러내야 한다. 삐죽하게 키만 큰 콘크리트 위령탑보다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세우고 그 아래 단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이름을 새겨 넣자.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진 윤장호 하사를 기리는 ‘윤장호 거리’도 만들고, 지난해 부산에서 산화한 소방 영웅 서병길 소방위를 추모하는 ‘서병길 광장’도 꾸미자. 온 나라가 반짝 추모 열기에 휩싸였다가 시간이 흐르면 유족만 기억하는 애국자들이 마침내 우리 곁에서 부활할 수 있도록.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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