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외국인투자가 내쫓는 경제자유구역

  • 입력 2007년 3월 13일 03시 01분


홍콩계 관광레저 업체인 A사는 2003년부터 전남 광양시 경제자유구역에서 해양스포츠 레저단지 건설을 추진해 왔지만 아직까지 착공조차 못했다. 17개 인허가권을 가진 부처 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실시계획 승인을 받는 데만 8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5월 실시계획 승인이 이뤄진 뒤에도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규제에 묶여 공사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이 회사가 한국에 와서 확인한 사실은 복잡한 행정 절차와 거미줄 규제, 높은 세금과 비싼 땅값, 미흡한 인센티브 등이다. 경제자유구역이 외국인투자가를 유치하기는커녕 내쫓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A사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경제자유구역까지 만들어 놓고선 정작 투자에 나선 외국인투자가들을 규제로 꽁꽁 묶어 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2일 내놓은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위한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자.

인천, 부산·진해, 광양 등 3개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외국인 투자금액은 사업 추진 첫해인 2002년에는 40억3000만 달러였지만 2003년에 4000만 달러로 뚝 떨어졌다. 2004년부터 작년까지도 연간 2억∼6억 달러 수준에 그쳤다.

우리나라 경제자유구역과 유사한 중국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지구는 1990년 개발 첫해 외자 유치 규모가 3000만 달러에 그쳤으나 2005년 56억5000만 달러까지 급증했다. 푸둥지구는 과감한 규제 철폐와 파격적 인센티브로 승부를 걸었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푸둥지구에 들어오는 외국인투자가들에게는 법인세율을 절반으로 깎아 주기도 했다.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 대신 중국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경제자유구역마저 외국인투자가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으니 다른 곳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미 규제에 발목 잡힌 국내 투자가들은 의욕을 잃은 지 오래다. 이런 투자공동화 현상은 성장잠재력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상의는 보고서에서 “경제자유구역 내 규제 개선 방안을 빨리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경제자유구역마저 투자공동화가 이어진다면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경제 각 분야 인사들의 우려가 더욱 현실화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치영 경제부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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