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별]영화사 ‘아침’ 대표의 ‘해맑은 재석씨’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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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자주 없었던 내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묻는 게 있다. “대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 난 늘 주저 없이 대답해 왔다. “웃기는 남자!”

대화 안 되는 서먹서먹한 순간을 잘 못 견디고 재미가 없으면 피곤을 두 배로 느끼는 난 남자건 여자건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일도 많고 바쁘고 지치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을 텐데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의 답은 ‘텔레비전 보기’다. 평소에 글쓰기나 말하기에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이냐고 하면 ‘개그 프로 안 빼먹고 다 골라 보기’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빡빡하고 짜증나는 나의 일상을 위로해 주고 순발력을 키워 주고 즐거움도 주는 사람은 유재석 김용만 박수홍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반듯하고 예의 있게 웃겨 주는 매너 좋은 개그맨들이다.

난 나이에 비해, 사는 방식에 비해 유난스레 오락 프로그램과 텔레비전을 좋아한다.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들 하지만 난 안 보면 바보가 되는 상자가 텔레비전이라고 늘 주장한다. 선천적으로 게으른 ‘귀차니스트’인 탓도 있고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면 시간에 맞춰 집으로 뛰어 들어와 개그 프로 보면서 웃는 일이 진정으로 즐겁기 때문이다.

나를 좌지우지하는 역사적인 인물이나 명사에 대해 묻는다면 2박 3일을 고민해도 잘 모를 것 같다. 체면 생각하랴, 주위의 시선 고려하랴 기타 눈치 보고 선택해야 할 것 같은 작은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내 일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게 즐거움을 주는 개그맨들이며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핫(hot)’한 화제의 중심에 놓여 있는 ‘해맑은 재석 씨’다. 유재석은 평소에 개인기 없고 개성 없다고 본인의 능력과 영역을 과소평가하는 고백을 자주 하지만 그것마저 그가 가진 실력의 일부다. 그래서 이 글은 단 한 번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유재석에게 보내는 일종의 열렬한 팬레터다.

일반인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사회자와 패널들의 역할이 중요한 화요일 저녁 ‘진실게임’(SBS) 속의 유재석은 흔들림 없는 중용의 MC다. 그는 누구를 대하든 평등하게 웃어 주고 평등하게 친절하다. 어색하고 쑥스러운 개인기로 무대를 부담스러워하는 일반인 출연자들에게 자신이 솔선수범해 부딪쳐 주는 유재석을 보면 ‘사람 좋음’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를 알게 된다.

최고의 순발력과 입담을 자랑하는 김원희와 더불어 완벽한 남녀 혼성의 호흡을 보여 주는 ‘놀러와’(MBC) 속의 유재석은 흥미로운 청백전의 선을 잘 지켜 주는 훌륭한 심판이다. 게스트들의 ‘말발’을 세워 주기 위한 그의 작고 부단한 노력은 평소의 선한 성품을 느끼게 한다.

때론 온몸으로, 현란한 말솜씨로, 주변에 대한 견제로 열 명이 넘는 출연자와 함께 뒹굴며 손발을 맞추는 ‘X맨’(SBS)의 유재석은 안정감 있는 솜씨를 가진 명사회자다.

어리바리한 듯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진 것처럼 굴지만 사실은 멋진 개그맨들인 여섯 남자의 모임 ‘무한도전’(MBC). 거기서 유재석은 그야말로 최고의 진행자이며 좋은 패널이며 열정적인 관객이기도 하다. 사건의 중심에 서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그 사건의 주인이기도 하며 그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는 ‘3박자 개그’를 하는 유재석을 보면 의도되지 않은 천재성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동료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콤플렉스가 없고 경쟁심 또한 거리가 멀며 머리가 깨지고 넘어지는 슬랩스틱을 하더라도 고급스러운 기운을 풍긴다.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개그, 상대방의 처지에 서는 코미디를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데 난 그것이 유재석만의 장점이며 매력이라 말하고 싶다. 서로 함께 빛나는 방법을 아는 그의 코미디 방식은 아마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의 성격 덕분일 것이다. 유재석이 남녀노소에게 골고루 인기가 많고 안티가 적으며 ‘만인의 연인’ 같은 이미지로 여자들에게 보호 본능을 일으키며 안정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스타가 되면 한 번은 겪고 지나가야 할 무명의 신인 시절 사진이 공개되기도 하고 꽉 찬 혼기를 앞두고 이리저리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하다가 최근엔 연인이 생겨 한바탕 언니들의 가슴을 후벼 파기도 했던 유재석. 열애설이 공개되어 카메라가 출동했을 때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말을 아끼면서도 최대한 공손하게 취재진을 대하는 그의 태도 또한 유재석의 인간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이 시대가 원하는 ‘훈남’(보고 있으면 훈훈해지는 남자란 뜻)의 조건을 갖춘 착하고 성실한 남자, 남들이 하면 억지가 분명한데 그가 하면 뭐든 사랑스럽다. 햇살 같은 웃음을 주는 이 기분 좋은 남자 유재석이 나의 주말과 재미없는 일상을 책임져 주고 있다. 적어도 요즘의 내게 그가 ‘내 마음의 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


■ 착한 성품이 드러나는 ‘배려형 개그’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는 ‘투캅스’ ‘친절한 금자씨’ ‘투사부일체’ ‘왕의 남자’ 등 수많은 화제작의 카피라이터였으며 ‘황산벌’ ‘달마야 놀자’ 등의 영화에 제작이사로 참여했고 재작년 독립해 영화사 아침을 설립한 뒤 ‘도마뱀’과 ‘라디오스타’를 제작했다.

“세상에는 화낼 일이 별로 많지 않다”는 그는 항상 활기가 넘치고 밝은 ‘에너자이저’ 타입. 코미디 영화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얻는 웃음이 슬프고 짜증 나는 상황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힘 중 한 가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작년에 좀 많이 아팠거든요. 그걸 이겨 낼 수 있었던 것도 유머의 힘이에요.”

그래서 그가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는 유난히 개그맨이 많다. 어렸을 때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자랐고 이후 김형곤의 사회 풍자 코미디, 심형래의 슬랩스틱을 거쳐 ‘말발’과 순발력으로 고급스러운 진행 솜씨를 보이는 최근의 개그맨들까지 두루 좋아한다.

남을 웃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코미디 영화는 관객이 많이 들어도 ‘수준 낮다’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다. 코미디 영화 제작에도 많이 참여해 본 정 대표는 “고급 유머와 유치한 유머는 한 끗 차이”라며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는 줄타기는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개그맨들은 실제로 만나 보면 말도 없고 웃기지도 않고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순진한 사람이 많아요. 다른 사람들은 상대방을 눌러야 살아남지만 개그맨은 자신을 낮춰서 상대방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잖아요. ‘무한도전’의 여섯 남자가 바보 같아요? 사실은 그들이 정말 지적이고 똑똑해요.”

그는 자신이 최고로 꼽는 3인방 김용만 박수홍 유재석의 스타일도 분석했다. 김용만은 도덕적이고 가정적이며 주변인들과 두루 잘 지낼 것 같은 이미지로 ‘푸근한 개그’를 보여 준다. 박수홍은 ‘소심한 개그’ 스타일. “전 소심한 놈이에요” 하며 자신의 단점을 귀엽게 부각한다. 유재석은 ‘배려형 개그’. 이는 만든 이미지가 아니라 본디 그의 성품일 거라고 정 대표는 믿는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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