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이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 때 YS는 내내 자리를 지키며 반(半)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YS의 적극 행보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구하기’ 활동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이 더 강하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노무현 대통령과 DJ가 회동하자 YS는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와 만나 “정치적 야합을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JP도 YS를 따라 이 전 시장 지지를 선언할 예정이다.
DJ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꼴로 신장투석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2·13 베이징 6자회담 합의 이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햇볕정책과 북의 핵실험 직후 강경 대응에 반대했던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1시간 가까이 지친 기색도 없이 설명한다. 한 인사는 “요즘 말로 ‘필’이 꽂힌 것 같더라”고 전했다. 지난주 한 강연에서는 ‘10년 내 완전통일론’을 주장하며 야당 총재 시절 즐겨 썼던 “통일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날 것”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북한 포용을 역설했다.
내달 3일 민주당 전당대회의 최대 변수도 DJ의 의중이다. DJ의 차남 홍업 씨가 아버지 고향인 무안-신안에서 4·25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데 대해 민주당 관계자들이 ‘꿀 먹은 벙어리’인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DJ가 범(汎)여권 통합에 대비해 자신의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당 체제를 만들려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영락없이 ‘돌아온 총재님’이다.
평생 라이벌인 YS와 DJ의 역대 주요 전적은 2승 2패다. 1967년 신민당 원내총무에 DJ가 지명되자 YS는 의원총회 인준이 거부되도록 배후조종해 첫 대결에서 완승했다. 그 뒤 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과 1988년 총선 때는 DJ가, 1992년 대선 때는 YS가 각각 이겼다. YS의 차남 현철 씨는 내년 총선에서 아버지의 고향 거제에 출마할 의욕을 보이고 있다. 홍업 씨와 현철 씨가 대를 이어 정치적 경쟁을 벌이는 양상까지 상상된다.
‘햇볕’이냐, ‘반(反)햇볕’이냐가 DJ와 YS 대결의 한 키워드이다 보니 북에 있는 또 다른 ‘김 씨’의 의중이 대선의 주요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선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이명박 박근혜 씨에 대해 “미국 방문 때 아부 굴종의 행태를 보였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한나라-YS-JP 대 범여권-DJ-북’의 대결 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가 ‘경제’가 될지, ‘한반도 평화’가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번 선거가 또다시 ‘양김(兩金)’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차츰 분명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시계는 지금 몇 시인지 헷갈린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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