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원목]한미 FTA 오해와 진실

  • 입력 2007년 3월 21일 03시 00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이 눈앞에 와 있다. 이 시점에서 FTA에 포함될 ‘투자자-정부 중재’와 ‘비(非)위반 제소’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비위반 제소는 협정에 위반되지 않은 조치로 인해 상대 국가의 혜택이 무효화되거나 침해될 경우 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이번 협상에 반대하는 측은 한국 정부가 취하는 정당한 공공 규제가 FTA로 무력화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국내의 미국 투자기업 자산을 불법적으로 수용하거나 환경 보건 기준을 강화해서 영업 손실을 초래한 경우(간접수용) 이 기업이 직접 한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가 FTA를 위반하지 않은 합법적인 규제를 가할 때도 제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산 의약품을 국민건강보험 적용대상 의약품 목록에 등재하지 않거나 광우병 쇠고기를 반송하는 경우와 같은 정당한 조치를 취할 권한이 상실된다는 주장이다. 두 제도는 미국 기업의 상업주의 도구로 활용되는 ‘장롱 속의 칼’이라는 말이다.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 투자자-정부 중재는 단순히 영업이익이 침해됐다고 발동하는 제도가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간접수용의 범위에 대한 명문의 제한조항이 있어 재산권을 송두리째 빼앗는 방법과 같은 정도의 심각한 영업 손실을 초래하는 정부 규제에 한해 발동될 수 있다. 심각한 손실이 발생했어도 공공복리 목적으로 공평하게 취한 규제는 제외된다.

비위반 제소는 FTA가 체결될 당시에 자국 기업의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었다는 조건이 요구된다. 이 요건이 비위반 제소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내용이다. 이익 침해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그 가능성까지 감안해 방침을 정한 후 협상을 타결했을 것이므로 그 이후에 취한 상대국 정부의 합법적인 조치에 대해서까지 제소를 허용하는 제도는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FTA 협상이 진행 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건강보험 약가적정화 방안을 시행해 선별적으로 등재된 의약품에 대해 보험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로 전환했다. 구체적인 운영 기준도 미국에 통보했다. 미국은 자국의 의약품이 등재목록에서 탈락할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한 상태에서 최종 쟁점타결에 임했다. 협상이 타결될 경우 미국의 기대손실은 이미 결과에 반영되는 셈이다.

협정이 체결된 후 미국이 한국의 약가적정화 조치에 대해 ‘장롱 속의 칼’을 빼내 드는 일은 성공 가능성이 없다. FTA가 체결되기 이전에 변경이 확정된 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는 비위반 제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건강 증진, 공중도덕 준수, 자원 보호 및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는 일반적인 예외 사유에 해당돼 비위반 제소의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된다. 위생이나 제품 표준과 관련된 조치도 비위반 제소의 대상 범위에서 배제된다. 조류인플루엔자나 광우병에 대처하기 위한 정당한 위생조치에 대해 비위반 제소를 감행하는 행위는 무모한 짓일 뿐이다.

한국 정부의 규제가 비위반 제소를 통해 패소한 경우에도 조치 자체가 위법하지는 않으므로 해당 조치를 계속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 다만 상대국의 이익 침해를 관세감축이나 금전보상 형태로 적절히 보상하면 된다. 투자자-정부 중재의 경우에도 금전배상이 일반적인 판정이행의 방식이다.

어떤 경우에도 FTA 체결로 인해 한국 정부의 정당한 규제 조치를 철회해야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확산되는 견해는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한다. 국가적 중대사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대중적인 오해가 확산되는 현상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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