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만주족의 굴욕

  • 입력 2007년 3월 21일 03시 00분


만주어가 사실상 사멸(死滅)됐다는 어제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가 눈길을 끈다. 중국의 50여 개 소수민족 가운데 만주족이 1000만 명을 헤아린다고 하지만 이들은 모국어를 모른다. 만주어를 아직 쓰는 사람은 고립된 마을에 사는 18명에 불과하고 다들 여든이 넘은 고령이어서 만주어가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한다.

민족이 모국어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은 다른 문화권에 철저히 동화되었다는 뜻이다. 문화적 의미에서 민족의 종말이다. 만주족은 청나라를 일으켜 중국 대륙을 260년간 호령했던 지배자였다.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역사는 비정한 것이다.

청나라의 비참한 末路

한때 북한에 체류했던 소설가 황석영이 김일성 주석에게서 들었다는 얘기다. 함경도에는 만주족의 모태인 여진족이 남긴 지명이 여럿 있다고 했다. 아오지 탄광의 ‘아오지’는 ‘불타는 돌’이라는 뜻이고, 주을 온천의 ‘주을’은 ‘뜨거운 물’이라는 여진 말이다.

여진족의 5개 부족 가운데 건주여진은 고려 말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내려와 살면서 조선시대에는 우리와 국경을 접하게 된다. 여진족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상대였고 골치 아픈 존재였다.

건주여진이 배출한 영웅이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다. 그와 아들들이 이끈 만주국은 수십만 명에 불과한 인구로 1억 명이 넘었던 중국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우리에겐 ‘미개한 오랑캐’ 정도로 인식되어 있는 만주족이지만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강한 군사력은 명나라 사람들이 벌벌 떨 정도였다. 국가경영에서도 냉철했다. 누르하치가 죽은 뒤 10명이 넘는 아들이 있었으나 권력 다툼을 벌이지 않았다. 누가 왕위를 이을지 토론을 거쳐 가장 유능하다고 판단되는 여덟 번째 아들로 결정했다. 그가 병자호란 때 인조를 무릎 꿇린 청나라 태종이다.

그들은 철저한 능력 본위로 나라를 운영했다. 명나라에서 투항해 온 사람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요직에 등용했다. 이들에게서 얻어낸 명나라의 선진기술은 명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작은 나라가 번성하는 길은 역시 현실적 합리주의와 최고 인재의 발굴뿐이다.

청나라는 중국을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동화되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 이전에 중국을 정복했던 민족들이 차츰 중국화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민족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만주족이 사는 곳에 한족(漢族)의 출입을 금지했고 공문서에 만주어를 먼저 표기하게 했다.

철두철미한 노력에도 청나라는 무너지고 오늘날 언어가 사멸되는 굴욕적인 말로를 맞았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흡인력은 이토록 무섭다. 청나라 이전에는 중국 땅이 아니었던 거대한 만주 일대가 청나라 멸망 이후 고스란히 중국 손에 들어갔으니 중국으로선 크게 남는 장사였다.

중국은 사회주의의 긴 잠에서 깨어나 몸을 추스른 뒤 동북공정을 들고 나왔다. 중국 주변이 모두 중국역사에 속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중화민족’을 강조한다. 과거처럼 한족이 중심이 되고 소수민족이 곁가지로 존재하는 체제가 아니라, 중국 전체를 다민족국가로 보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왜곡은 이런 체제 인식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남의 역사 빼앗기’라는 시각은 일부만 보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 아니다

만주족의 흥망은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리는 광복 후 중국과 단절된 삶을 살아왔으나 이젠 피할 수 없다. 조선은 속국이었고 북한 일대도 자기 땅이었다는 게 중국의 본래 시각이다. 그러면서 다민족국가를 내세우는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중국의 재등장에 단단히 채비를 갖춰야 한다.

큰 맥락에서 역사를 봐야 길이 보인다. 남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의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해 민족정기가 서지 않았다는 좁은 인식이나, ‘우리 민족은 대대로 평화세력’이라는 순진한 인식으로는 거센 파도를 넘을 수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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