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 하기 나쁜데 살기 좋은 나라도 있나

  • 입력 2007년 3월 21일 03시 00분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마법에 빠져 있다”며 “(이는) ‘목소리 큰 일부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 하기 좋은’을 ‘대기업에만 좋은’으로 오도(誤導)하는 수사(修辭)가 놀랍다. 권 위원장 자신이 매사에 편을 가르는 ‘정권 코드’의 마법에 빠져 있지 않은가.

일류국가들은 정부규제 완화, 친(親)기업 환경 조성, 세금 경감 등을 통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기업 하기 더 좋은 나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자유지수는 세계 157개국 중 36위다. 과도한 정부규제야말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뤄 낸 우리 기업들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권 위원장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보다는 소비자,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차(馬車)를 말보다 앞에 놓겠다는 격이다. 기업 하기가 나쁜데 어떻게 소비자와 국민이 살기 좋아질 수 있나. 그는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기업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중(二重)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살기 좋은 나라’를 싫어할 국민이 있겠는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세계적으로 검증된 방법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투자가 촉진되고 일자리가 더 생기며 국민소득이 늘어난다.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왔다.

‘양극화 해소’가 구호만 외치면 저절로 되는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양극화 완화’의 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에 역류하는 정책들을 고집하니 빈곤층이 줄기는커녕 늘어나는 것이다.

기업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수출 챔피언 한국이 길을 잃었다’는 해외 언론의 보도처럼 선진국과 개도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상태다. 미래의 성장동력은 찾지 못한 채 대기업마저 이익률이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기업들에 재 뿌리는 것이 공정거래위 역할인가.

어제 취임한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자유시장 경제질서 확립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기업 하기 좋은 제도 정착을 위한 개선작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의 이 같은 결의에 정부가 또 찬물이나 끼얹지 않을지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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