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재원]포항 ‘상생도시’ 선포에 거는 기대

  • 입력 2007년 3월 24일 03시 01분


몇 년 전 국책연구원과 모기업-하도급 기업 간의 불공정 사례를 울산과 창원지역에서 조사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우리나라는 몇몇 성장동력 산업에 의해 지탱되는데 여러 형태로 하도급 기업과의 불공정거래 문제를 안고 있어 파업 가능성이 높다고 느꼈다. 또 이런 기업에서의 파업은 노사관계라기보다는 힘센 자와 약자의 계층 간 문제로 귀착되므로 갈등관리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갈등관리로 풀어야 할 하도급 문제

갈등관리 측면에서 발생하는 노사문제를 푸는 방법은 기업 내에서 발생한 노사문제와는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한다. 우선 갈등 당사자가 복잡하고 노사가 한 조직에 속해 있지 않다. 기업 내 노조를 상대로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키우고 성장하면 향후의 과실을 공유한다고 설득하는 것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산업사회가 성숙하면 노사관계를 사회의 다양한 계층 간의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틀에서 풀어야 함을 보여 준다.

어떤 방법으로 풀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분쟁의 당사자가 넓은 범위에 퍼져 있는 경우 이들을 포괄하는 더 큰 모(母)집단의 이익을 위해 갈등과 투쟁보다는 상생(win-win)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일이 근본 방향이다. 더 큰 모집단이란 지역일 수도 있고 국가일 수도 있다. 물론 모집단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느낄수록 갈등의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 노사관계에 청신호를 주는 소식이 이어졌다. 민주노총이 파업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 지침을 최근 발표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23일 대대적인 노사화합 행사를 열었다. 정준양 포스코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과 56개 외주 파트너사(협력업체) 노사 대표, 8개 포스코 출자회사, 포항전문건설업체 등 150여 업체 관계자가 참석해 ‘내 일터 내 고장 산업평화를 위한 포항지역 범포스코 가족 노사 한마음 선포식’을 가졌다.

지난해 83일간 계속된 포항 건설노조의 극한 파업으로 ‘파업도시’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포항시에서 새로운 노사문화가 생긴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54개 외주 파트너사도 21일 ‘광양지역 산업평화 선포식’을 열었다.

앞으로 현실적인 이해가 상충될 때 어느 정도로 갈등을 완화하고 해결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엇갈릴 소지가 있는 당사자들이 산업평화와 상생이라는 원칙에 합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다행스러운 일이다. 갈등보다는 타협을, 자기 몫만 챙기기보다는 서로가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뜻을 모은 일은 대단하다.

파업도시 불명예 씻어 내길

포항의 노사정 상생도시 선포식은 국내 노사관계와 계층 간, 집단 간 갈등 완화라는 측면에서 크나큰 진전을 이뤘음을 의미한다.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한 방향으로 의견을 접근시키면서 포항을 상생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꿈, 갈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선포식에 참여한 모든 당사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난해 여름 한국노동교육원이 실시한 국민의식 실태조사에서 향후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더니 ‘양극화 해소’가 27.8%, 노사협력이 25.8%로 전체의 53.6%를 차지했다.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갈등문제도 상생의 정신을 근간으로 현명하게 극복하고 이런 움직임이 다른 기업, 다른 업종, 다른 지역으로 확산돼 갈등관리 측면에서도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사회를 구현하는 데 밀알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재원 한양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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