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중년은 인생의 주요 고비에 해당한다. 인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로 나누면 중년은 가을일 것 같다. 결실의 계절이면서 매서운 겨울 추위를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중년의 위기’를 그린 드라마도 꽤 있고, 같은 주제의 책도 많다.
최근 발행된 이코노미스트가 출범 50주년을 맞은 유럽연합(EU)을 표지스토리로 다뤘다. 제목은 ‘EU 중년의 위기(Europe's mid-life crisis)’. EU의 현재와 미래를 짚은 14쪽의 특별보고서까지 곁들였다.
25일 독일 베를린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선 유럽 통합을 기념하는 축제가 벌어졌다. EU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베를린 선언’을 발표하며 우의를 다졌다. 그러나 선언문이 나오는 과정에서 진통이 적지 않았다고 외신은 전한다. 쟁점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EU헌법 부활 및 EU 추가 확대.
전날 정상들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감상했다. 27개국 정상들은 c단조의 셋잇단음표로 독특하게 시작하는 ‘운명 교향곡’을 들으면서 어떤 상념에 빠졌을까.
유럽 통합은 EU 회원국 국민에게 많은 혜택을 안겨 줬다. 잦은 전쟁의 종식, 통합경제권 실현과 같은 굵직한 것에서 유럽대륙 여기저기서 뛰던 최고의 선수들을 불러 모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축구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것까지….
그러나 밝음의 이면에는 어두움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한 시장조사기관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주요 유럽 국가 국민의 44%가 EU 가입 후 생활이 더 악화됐다고 답했다. EU헌법에 대한 반대 의견(27%·찬성 35%)도 만만치 않았다.
오죽하면 독일의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가 최근 인터뷰에서 “EU 전체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제안까지 했겠는가.
EU가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무엇보다 경제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권두언에서 지적했다. 암울할 정도의 저성장과 고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 노동시장을 더 유연하게 만들고 방만한 복지정책을 개혁하며 시장 개방도 더 확대하는 변화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충고도 곁들였다.
내년이면 환갑을 맞게 되는 대한민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투자심리나 경제지표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말이 나온 것은 이미 오래된 일. 경제 살리기에 몰입해도 모자랄 판인데 집권세력은 개헌 놀음, 대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는 EU 정상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유럽은 스스로 중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헌법을 놓고 언쟁하는 대신 가장 중요한 것(경제)에 집중하기만 하면….” 이 충고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EU에만 합당한 것이 아니다.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최영훈 국제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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