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매국노(賣國奴)

  • 입력 2007년 3월 27일 20시 08분


1993년 12월 5일 이경식 경제부총리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들어서자 야당인 민주당 김모 의원이 “이 매국노, 이완용 같은 놈”이라고 외치며 달려들었다. 이 부총리는 매국노 소리에 얼마나 분했던지 그날 저녁 사석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만나면 그자를 두들겨 패 줄 것”이라고 말했다. 매국노 발언은 우루과이라운드(UR) 쌀 협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쌀 시장 10년간 개방 유예, 10년 후 재협상’은 UR에서 가장 성공적인 협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남 강진-완도 출신 열린우리당 이영호 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성 소신을 밝혔다가 지역 농민회원들에게서 ‘매국노’ 소리를 듣고 있다. 을사오적(乙巳五賊)을 떠올리게 하는 매국노라는 욕은 상대에게 말할 수 없는 치욕감을 안긴다. 공직자나 정치인에겐 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평평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세계화, 개방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한미 FTA도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이다. 반대야 할 수 있지만 이를 놓고 ‘나라를 팔아먹는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반미(反美) 감정의 표출이라면 더 위험하다. 미국외교협회(CFR) 줄리아 스웨이그 이사가 분류한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만도 8개나 된다. 반미 숭미(崇美) 혐미(嫌美) 찬미(贊美) 연미(聯美) 용미(用美) 항미(抗美) 폄미(貶美)가 그것인데 이 중 어느 것이 과연 매국에 가까울까. 극단적인 좌파의 눈으로 보면 연미, 용미조차도 매국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든 미국을 이용하는 것이 이 시대의 애국(愛國)일 터이다.

▷이 정권에서 장관, 당의장, 원내대표를 지낸 실력자들이 줄줄이 한미 FTA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대권 주자로 꼽히는 김근태, 천정배 의원은 단식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처신이다. 반대를 하려면 현직에 있을 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도 한미 FTA를 매국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대선을 앞두고 지지세력을 의식해서일까. 그들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진짜 매국적이다.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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