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펑펑 쓰는 세금’ KAIST에 조금만 떼 주지…

  • 입력 2007년 3월 27일 23시 30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남표 총장이 그제 “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을 만들 수 있도록 1000억 원을 빌려 학교에 투자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학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일정 규모의 교수와 연구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서 총장은 은행 대출을 받아 교수를 늘리고 세계적인 기업들의 연구센터를 설립할 계획을 수립했지만 정부 측 이사진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KAIST는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연구 중심 대학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출연기관이다. 그런데 정부출연기관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은행에서 돈을 꾸려면 이사회와 과학기술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 측 이사 4명은 전례(前例)가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나라를 위해 절실한 어떤 일도 전례가 없으면 가로막아야 하는가. 기막힌 관료 보신주의다. 정부가 국립대의 법인화를 독려할 때는 ‘수익사업과 차입경영의 혜택’을 강조하면서 이미 법인화된 KAIST에 대해서는 차입경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모순이다.

서 총장이 지난달 본보 대담에서 밝혔듯이 10년, 20년 뒤 국민이 먹고살려면 새로운 과학기술과 인재 양성에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시급한 국가과제가 아닌 일에 통 크게 세금을 쓴다. 하는 일도 별로 없는 여러 ‘식물위원회’의 올해 예산이 2352억 원이다. 현 정부가 국토를 균형 발전시킨다며 지급한 토지보상금은 무려 60조 원이다. 과거사의 진상을 밝힌다며 지난해 쓴 세금만도 1782억 원이었다. ‘피해자 보상금’을 포함한 올해 과거사 관련 예산은 3517억 원이다.

코드 사업과 전시성 사업, 과거사 파헤치기에는 수천억원의 혈세를 아낌없이 쓰면서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과 인재 양성 투자를 외면하는 정부가 미래, 개혁, 혁신을 강조하니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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