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통한 사이버범죄 등 신종 범죄의 출현, 이유나 동기 없이 저지르는 ‘묻지마식 범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과 유괴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갈수록 흉악해지며 그 수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범죄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가 증가했다. 몇 년 전에 네 살 된 어린이가 성폭력 전과자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살해된 뒤 토막 난 시체로 버려진 일이 있었다. 작년에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동네 신발가게 아저씨가 살해한 뒤 불태워 버린 엽기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지난해 만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700여 건이었다. 성범죄의 특성상 10% 미만의 낮은 신고율을 감안하면 희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유괴 사건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달만 해도 인천에서 초등학생을 유괴한 이모 씨가 완전범죄를 위해 아이를 산 채로 저수지에 던져 살해한 사건에 이어 제주에서 여아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셋째, 불특정인을 노리는 ‘묻지마식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작년 10월 경기 여주군 가남면 태평리 도로상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가 길을 가던 40대 여성을 향해 시너를 뿌린 후 불을 붙이고 달아난 사건을 들 수 있다. 묻지마식 범죄에 대해 수사기관은 목격자의 제보에만 의지할 뿐 공조수사나 과학수사에서 많은 허점을 노출하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이나 성폭력, 유괴 범죄, 묻지마식 범죄와 사이버상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수사기관인 경찰이나 검찰 등 공권력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에 대응하려고 당국도 여러 가지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가 민간 경비업체와 협력해 피해 학생을 보호하겠다는 내용, 전자팔찌 착용 제도의 도입,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는 대상(12, 13세)을 10세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 1개월 이내의 초단기 소년원 송치(쇼크구금) 제도 신설 등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봉책만으로는 범죄 방지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다음과 같은 사항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 사회 기강이 확립돼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엔 원칙과 기준과 법을 생각하지 않고 떼만 쓰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퍼져 있다.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에 불리할 때 무조건 생떼를 쓰면 된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둘째, 범죄나 비행에 대한 고발 또는 신고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온정주의 문화가 깊이 자리 잡아 범죄를 보고도 고발하거나 신고하는 정신이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범죄 문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은데 내가 언제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범죄를 철저히 신고하자.
셋째, 범죄 방지는 어느 한 기관의 힘만으로는 어려우므로 경찰 검찰 법원 교도소 보호관찰소 등 형사사법기관의 유기적인 협조와 공조가 필요하다.
넷째, 범죄 예방과 방지에 대한 시민운동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지역사회 학교가 삼위일체가 돼서 범죄 예방과 방지에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용준 연세대 법무대학원 강의교수·한국형사 사법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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