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의원님들의 反FTA 단식 이제 와서 왜?

  • 입력 2007년 3월 28일 03시 01분


2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민생정치모임의 천정배 의원이 26일 오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데 이어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무소속 임종인 의원도 이날부터 물과 소금만을 먹는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천, 임 의원은 국회 본청 현관 앞 좌우에 나란히 천막을 쳤고, 김 전 의장은 본청 안 본회의장 앞에 자리 잡았다.

아직 쌀쌀한 날씨 탓인지 천 의원의 천막에는 히터가 설치됐고, 천막 뒤에는 별도의 등산용 텐트 2개가 설치됐다. 천 의원은 오후 10시 이후에는 이 텐트를 본청 안으로 옮겨 그 안에서 잠을 잤다. 임 의원은 일단 27일 본청 밖 천막에서 밤을 새웠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오후 7시까지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을 한 뒤 이후에는 의원회관 자신의 방으로 이동한 뒤 아침에 다시 본회의장으로 ‘출근’했다.

농성장에는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 장영달 원내대표, 정동영 전 의장, 한나라당 문희, 통합신당모임 이강래, 장경수 의원, 민생정치모임 정성호 의원 등과 농민·시민단체, 서울시 의사회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가끔 손님을 맞는 단식 의원들보다는 천막에 전등과 히터 등에 필요한 전기선을 끌어오려는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더 분주해 보였다.

한미 FTA 협상의 졸속 추진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천 의원은 “한미 FTA는 추진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내주기만하고 얻은 것은 없다”며 “졸속 협상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전 의장도 “국민적 합의 없이 타결 시한에 쫓겨서는 안 된다”며 협상 타결과 비준을 차기 정부로 넘길 것을 주장했다.

임 의원은 “지금 이대로 한미 FTA가 타결되면 국민 생활과 나라 주권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며 “망국적인 협상을 즉각 중단하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나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또 그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의원이 스스로 그 틀을 허무는 모습은 우선 어떻게 설명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욱이 협상이 타결되면 국회는 그 타결안에 대한 비준동의권을 행사하게 된다. 만약 이들 주장대로 타결 내용이 우리에게 현저하게 불리하게 체결될 경우 비준동의에 반대하면 된다. 협정이 체결되기도 전에 단식 농성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비준동의라는 국회의 권한을 의원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김 전 의장과 천 의원은 범여권의 잠재 대선주자로도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이런 지도급 인사들이 의원들을 움직여 한미 FTA에 대한 공식적인 의사 표시를 이끌어내기에 앞서 천막부터 펼치는 것은 ‘정치적 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 국민들은 ‘투사’보다는 ‘리더’를 원한다.

이진구 정치부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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