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몸바사. 세계 각국의 수도나 도시 이름을 달달 외며 학창시절을 보낸 지금의 40, 50대에게도 그리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지만 몸바사는 엊그제 단 하룻밤 사이에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유명 도시’가 됐다. 케냐 몸바사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이사회에서 2011년 제13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지를 놓고 대구와 겨뤘던 러시아 모스크바의 1000만 시민, 호주 브리즈번의 180만 시민도 ‘몸바사’를 되뇌며 결과를 기다렸을 것이다. 스포츠 외교를 통한 도시의 유명세, 브랜드 가치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세계 주요기업들이 투자 및 마케팅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안홀트 도시브랜드 지수(CBI)만 봐도 조사 대상 60개 도시 대부분이 올림픽이나 각종 스포츠 외교로 지구촌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힌 곳이다. 2011년 8월이면 전 세계 65억 명의 시선이 대구에 쏠릴 것이다.
어제 아침 출근하자마자 이연택 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바덴바덴의 신화를 만들어 낸 정부 유치지원단 실무총책임자였다. 국내 ‘도시 서열’이 서울, 부산 다음에서 서울, 부산, 인천 다음으로 밀려난 대구가 ‘몸바사 쾌거’를 이뤄 낸 비결을 듣고 싶었다.
“대구 시민들의 용광로 같은 응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김범일 시장의 ‘준비된 경륜과 자질’도 맞아떨어졌을 겁니다. 그의 국제스포츠마케팅 마인드는 이미 서울올림픽 때 형성된 것입니다.” 이 위원장의 대답은 내 짐작과 맞아떨어졌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옛 총무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김 시장은 미국 남캘리포니아 주립대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던 1984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휘장사업과장으로 파견된다. 광고수익사업을 담당하는 핵심부서다. ‘흑자 올림픽’은 절대 과제였다. 1976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하고도 3400만 달러의 투자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대회를 반납해야 했던 우리였다. 당시 그는 연수 때 익힌 영어로 코카콜라나 코닥 같은 세계적 기업들을 직접 공략했다. 그때의 경험이 이번 육상대회 유치전에서 삼성그룹이란 좋은 스폰서를 잡게 했고, IAAF를 상대로 막판 ‘인센티브 히든카드’를 만들어 내게 했다.
지면을 빌려 무슨 논공행상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김 시장의 경우는 세계화(globalism)와 지방화(localism)의 경계가 무너져 가는, 이른바 글로컬리즘(glocalism) 시대의 리더십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몸바사 쾌거는 특히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국제스포츠대회 유치 전쟁에서 세계화(김범일)와 지방화(대구시민)의 ‘핵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줬다.
그리고 하나 더. 민주화 정권과 평균주의의 세월을 지내면서 잊고 있던 리더십의 몫을 되찾게 해 줬다. 국무총리까지 지낸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5%의 성장잠재력에 국민의 희망과 사기를 북돋워 1∼2%포인트를 추가할 수 있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몫”이라고 했다. 현 정권 사람들은 냉소를 날릴지 모른다. 그러나 김범일과 함께 꿈을 이뤄 낸 대구 시민들은 박 회장의 말뜻을 그제 체험한 셈이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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