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제2막]은행 지점장서 청소업체 점장 변신 김영선 씨

  • 입력 2007년 3월 29일 03시 00분


건물청소관리업체 ‘크리니트’ 안산점 김영선(50) 사장은 지방은행 지점장 출신이다. 그가 3년 전 청소업체를 시작한다고 하자 가족들은 “은행에서 일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미 그는 ‘남들이 알아주는 일’보다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택하는 것이 창업에 유리하다는 점을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창업하는 사람들은 첨단 기술을 이용하잖아요. 전 그럴 자신이 없었습니다. 거꾸로 몸을 활용하는 ‘아날로그’ 직종을 택했죠. 은행에서 배운 기획력과 조직 장악력을 청소업에 응용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김 사장이 22년간 근무한 은행을 그만둔 것은 2001년. 그는 “은행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오면서 ‘차라리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나가 사업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처음 해 본 사업은 직장 생활과는 달랐다. 한 광고 회사에 5000만 원을 주고 호남 지역 광고 판권을 따냈지만 영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본사가 문을 닫아 고스란히 돈을 날려야 했다. 농협에 고추장 납품하는 일도 해 보고, 중고 책 판매도 해 봤지만 모두 실패였다. 퇴직금 2억 원이 3년 만에 사라졌다.

사업 실패가 잇따르자 지인이 조심스럽게 청소업을 권유했다. 가족들은 말렸지만 명예나 체면을 따지기에는 상황이 절박했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철저히 준비했다. “한 달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고 창업 설명회에 참석했습니다. 청소업체 5, 6곳을 직접 방문해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지요.”

2004년 여름 ‘크리니트’와 계약했다. 가맹비, 청소용품 및 기계 구입비로 1500만 원이 들었다. 청소업은 ‘단순 노무직’이 아니라 ‘과학적인 사업’이라는 생각으로 몸과 머리를 함께 썼다. 우선 ‘품질은 높게 비용은 저렴하게’라는 원칙을 세웠다. 청소를 마친 뒤에는 바닥의 상태에 따라 청소 용액을 어떤 비율로 섞는지, 몇 평 청소에 몇 명이 필요한지를 꼼꼼히 적은 ‘청소일기’를 남겼다. 은행 직원 출신의 치밀함은 기획서와 견적서 작성에 큰 도움이 됐다. 기획서에 청소 용액의 이름, 청소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적어 신뢰도를 높였고, 이미 거래처가 있는 빌딩은 메모했다가 몇 달 후 다시 전화를 거는 식으로 고객을 늘려 나갔다.

이렇게 해서 거래 업소를 50여 개로 늘렸다. 그와 한 번 거래한 업소는 손을 놓지 않았다. 지난해 초부터는 꾸준히 월 600만 원의 순수입을 올리고 있다. 월 매출액은 2500만 원 정도다.

김 사장은 “은행 지점장 시절이 그립지 않으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지금 생활에 100%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 기술을 익혔으니 ‘평생직업’이 생겼고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도 되니 잔병도 없어지더라”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안산=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화이트칼라 미련 버린 결단력의 승리

화이트칼라 출신 창업자들은 특히 체면을 중시한다. 그래서 창업 아이템을 고를 때 환경을 많이 따진다.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일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상 그런 창업 아이템은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성공하기란 더더욱 힘들다. 밑바닥부터 제대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굳은 각오는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김영선 사장은 비록 몇 번의 실패를 겪긴 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준비된 창업자로 거듭났다. 그는 과감히 결단을 내렸고 금융권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영업 원칙을 세우고 실천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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