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오공단]한국의 이미지

  • 입력 2007년 3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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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동북아 문제만 연구하다 2004년 겨울에 처음으로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즉 필리핀부터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 연구를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직하는 연구소에 지역 연구자가 희귀하고, 더욱이 아시아 전문가가 아주 소수인 까닭이다. 동북아 전문가이지만 아시아의 문화와 사회 연구에 다른 사람보다 내가 적격이라고 믿은 연구소장 추천 덕분에 일을 맡았다.

미국 정부는 테러리즘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테러가 일어나는 지역의 전문가와 직접 교류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그런 교류를 위한 국제회의 주관을 맡은 사람이 나였다. 중국 일본 한국과는 지난 25년 동안 단단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았지만 동남아와 남아시아에 대해 내가 아는 전문가는 열 손가락 안이었다. 그러나 구글 시대에 못할 일은 없었다. 더욱이 오랜 기간 북한 연구로 머리가 반쯤 돌 것 같던 시점에 새 연구는 숨통을 틔워 주는 기분까지 들게 했다.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동남아와 남아시아 전역을 여행하면서 한류의 물결이 급진적으로 퍼져 있음을 경험했다. 인도네시아 학자와 대학원생은 김치 찬양에 여념이 없었다. 조류인플루엔자에 가장 이상적 음식이 김치라며 미국에서도 김치가 인기 있느냐고 물었다. 한국 무역인이 맛있고 잘 만든 김치를 판매해서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동남아로 유럽으로 퍼진 한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전문가도 한국의 가수와 영화를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스리랑카 수도의 작은 보석상 주인이 한국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우수성을 얘기할 때는 콧잔등마저 시큰해지는 느낌이었다. 아, 이렇게 먼 곳까지 한국의 문화 제품이 알려졌구나! 감개가 무량했다.

인도의 고아는 포르투갈 식민지였다가 가장 늦게 인도에 귀속된 인도 서쪽의 해양 지역이다. 웬만한 여행자도 잘 모르는 조용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학자들과 회의하는 동안 편두통에 좋다는 머리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하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내게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물들이지 않은 백발 탓에 나는 종종 일본인으로 취급된다.

한국인이라고 하자 활짝 웃으며 자기는 ‘비’라는 가수의 팬이라면서 정성스럽게 거의 20분이나 초과해서 마사지를 해 줬다. 지난 생일엔 친구가 비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를 한국에서 가져와 선물로 줬는데, 자기가 죽으면 같이 묻어 달라고 장래 남편감한테 부탁할 생각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나는 줄 선물이 없어 두둑한 팁을 줬다. 같이 머리 마사지를 받으러 간 미국인 동료가 “너는 가는 곳마다 인기인데 비결이 뭐야”라고 물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덕을 좀 보는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파리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 전면이 유리로 된 눈부시게 아름다운 샹젤리제의 한 건물 앞에 이른 아침부터 잘 차려 입은 젊은이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 회의 시작 전 아침 산책에 나섰던 참에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삼성의 휴대전화 기기 매장이 문 여는 날이란다. 모두 삼성 제품을 사려고 기다렸다. 샤넬 매장의 연말 세일 같은 분위기였는데 어떤 젊은이는 약혼자가 서울에서 샀다는 삼성의 휴대전화를 보여 주면서 “굉장히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행복의 이미지 세계에 심어가길

한국이 경제 선진국 대열에 끼고 한국 생산품이 세계시장 곳곳에서 팔리는 사실은 이미 옛날이야기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 품목과 전통 음식이 이토록 사랑을 받는다는 현실은 감동적이며 암시적이다. 한국의 이미지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맛과 정서, 행복의 이미지다. 정치가 가끔 3류에서 4류로 전락하는 한국인데 김치, 노래, 안방 연속극, 영화 그리고 아름다운 휴대전화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지금까지 한국을 이끌어 온 경제 발전이 경제 정책을 맡았던 지도자와 산업인 덕택이라면 장래 한국의 영향력은 손재주 많고 예술적 감각이 있는 국민 덕을 볼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난 걸 복되게 생각하고 전 국민이 힘을 합치면 멋들어지게 전 세계에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 주며 번창할 나라가 한국이다. 나도 계속 한국 덕을 보고 싶다.

오공단 미국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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