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니 몸이 나른하고 무겁다.
얼큰하고 뜨거운 육개장이 절로 생각난다. 개장국을 꺼리는 사람이라면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은 육개장이 제격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동경 전통 육개장’(02-566-9779)은 20년간 독특한 맛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의 육개장은 다른 곳과 다르다. 육개장 하면 떠오르는 고사리나 토란대, 숙주 같은 것이 없다. 고기를 뺀 건더기는 파밖에 없지만 얼큰한 맛으로 땀을 쏙 빼놓는다.
○ 주인장(오경희 씨·56)의 말
우리 집에 처음 온 손님은 대체로 불만이 많다. “왜 건더기가 없냐”며 투덜거린다. 하지만 국물을 몇 숟가락 뜨고 나면 표정이 밝아진다. 나중에는 모처럼 육개장을 제대로 먹었다며 돌아간다.
고향이 전라도 광주다. 20년 전 서울에 왔을 때 남편의 생각은 처갓집 육개장 맛으로 식당을 하자는 것이었다. 어머니(94)의 음식 솜씨 덕분에 3남 3녀가 먹고살았으니까. 건더기 재료를 넣고 육개장을 끓였는데 맛이 나지 않았다. 재료 맛이 그만큼 달라진 것이다.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우리 육개장의 비밀은 사골 육수다. 고기로만 국물을 내는 것이 아니다. 한우 사골을 센 불에 올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 8시간 이상 우려낸다. 다시 양지와 사태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우려낸 육수에 넣고 3시간쯤 끓인다. 그래야 ‘진국’이 나온다.
육수에서 건져낸 고기는 길쭉하게 찢어 그릇에 담아 놓는다. 고춧가루, 파, 마늘을 육수에 듬뿍 넣은 뒤 2, 3시간 끓인다. 손님 주문이 들어오면 육수에 고기와 송송 썬 파, 계란 고명을 얹어 내놓는다.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건더기라고는 고기와 파밖에 없는데도 국물이 얼큰하고 진합니다. 그 숨겨진 무언가가 땀을 빼게 만드네요.
▽주=맛의 차이는 사골로 만든 육수 때문이지. 한 번 끓이는 게 아니라 육수를 우려낸 뒤 고기를 넣고 끓이고, 양념을 넣고 또 끓여. 제 맛이 나는 육수를 만드는 데 최소 13시간 이상 걸려.
▽식=고추장을 푼 듯 진한 색깔과 맛이 납니다.
▽주=고추장을 쓰지 않는데도 그렇게 말하는 손님이 많아. 고춧가루와 파의 달착지근한 맛이 섞여서 그래.
▽식=육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뭡니까.
▽주=시간과 정성. 육개장은 제대로 만들면 돈 벌기 힘든 음식이야. 금세 만들어 빨리 상에 내놓는 가벼운 음식이 아니야.
▽식=상호의 ‘동경’에는 의미가 있나요.
▽주=많이 받는 질문인데 사업하려면 동(東)자가 들어가야 좋다고 해서. 서울(京)과 합쳐 동경이 됐어(웃음).
▽식=음식을 만드는 원칙이 있습니까.
▽주=음식은 정직해. 건더기도 별로 없는 육개장에 뭔가 특별한 맛이 없으면 손님이 가만있겠어? 내 꿈은 나중에 아들이 큰돈을 벌면 우리 음식 돈 안 받고 사람들과 나눠 먹는 거야.
한 그릇에 6000원.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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