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없는 젊은 작가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신진의 한 사람이다. 그의 글 대부분이 삶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뇌 없이 흔해빠진 이야기를 엽기적이고 환상적인 장치를 동원해 단편적으로 가볍게 다루었다. 신세대 작가 중 몇몇을 제외한 많은 이들이 이 작가와 비슷한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작품이 난무하면서 우리 문학은 독자에게 외면당하는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했다.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는 잠깐 반짝하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 젊은 작가의 작품을 접한 지도 참 오래된 듯하다.
노작가는 얼마 전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다른 원로 작가들도 최근 작품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 문인들에 의해 작년의 가장 좋은 소설로 평가된 박완서의 단편 ‘친절한 복희씨’를 비롯해 김원일의 ‘전갈’, 조정래의 ‘오 하느님’, 이제하의 ‘능라도에서 생긴 일’, 황석영의 ‘바리데기’, 김주영의 ‘붉은 단추’ 등이 이미 발표됐거나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60, 70대 원로 작가들이 잇달아 작품을 내놓으면서 주목받는 이유가 뭘까? 두 가지 답을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만년필과 관련된 부분이다. 문학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기에 걸음걸이가 무겁다. 문학은 그러한 본래의 걸음걸이로 균형과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 문학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고, 분단된 조국과 민족의 아픔을 다루고, 삶과 인생의 보편적 의미를 탐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작가의 만년필에는 이 시대의 발 빠른 행보에 맞춰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신세대 작가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문학의 본질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다음, 습작 장수와 관련된 부분이다. 작가는 전문가여야 한다. 시류에 편승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피상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한 우물을 파서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때 비로소 좋은 작품을 낼 수 있다. 이것은 문학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 모든 방면에 해당되는 진리일 것이다. 10만 장과 2만 장의 차이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는 지표가 아닐지. 한 분야를 치열하게 파고들어 세월이 흐를수록 그 분야에 대한 인식을 점점 넓고도 깊게 펼쳐 보이는 작가의 작품은 아름답고 황홀하지 않은가?
문학을 ‘고독한 백조의 마지막 노래’에 비유하곤 한다. 모든 새가 칠흑 같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우아한 백조처럼 홀로 고독하게, 최후까지 어두운 밤하늘을 비상하여 모든 새가 나아갈 방향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미운 오리새끼가 돼 버린 현재의 우리 문학이 다시 화려한 백조로 부활해야 한다는 것, 그 선언적인 자리에 만년필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작품이 놓여 있다. 문학에 대한 넘쳐흐르는 열정과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아 온 원로 작가들이 부르는 고독한 백조의 장엄한 노래를 듣노라면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문흥술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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