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 입력 2007년 4월 3일 19시 41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을 ‘정보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사촌’의 의미는 정보가 완전하다는 의미다. 잘 안다는 것이다. 부자가 된 사촌은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달라지고 애들 교육이 달라진다. 사촌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놀부 심정이 이해된다. 몰랐으면 좋을 텐데 알게 되니 고통이 시작된다. ‘비교’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선도하는 정보화 시대의 그늘 중에는 사촌지간처럼 가깝게 살지 않아도 컴퓨터 하나로 다른 사람의 삶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것도 있다. 아는 게 많으면 비교와 분석 대상이 많아진다. ‘비교’는 제 분수를 알게 해 주는 순기능도 있지만 질투를 증폭시키는 역기능도 있다.

실제로 부자에 대한 정보가 흔해지다 보니 보통 사람들이 더 괴로워졌다고 한다. 미국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번스타인은 이를 ‘이웃 효과(neighbors effect)’라 불렀다.

‘부자들이 부유해지면 부유해질수록, 전자매체를 통해서든 뭐든 우리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들 때문에 더욱 비참함을 느낀다.’

이제 우리 시대 빈곤은 세끼 밥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가 되었다. 이런 의식은 상처가 되어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다.

강남 집값 폭등 직전에 강북으로 이사 간 게 괴로워 자살을 한다든지, 재개발로 돈을 벌게 된 이웃이 미워 독극물 우유를 배달한다든지, 잘사는 친구 집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위협한다든지 하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런 상대적 빈곤감이 만든 극단적인 경우다.

너나 나나 사는 데 별 차이가 없었던 시대를 당연시하며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최근 10여 년 사이 벌어진 격차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모두 함께’라는 일체감을 지탱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당혹스러움과 강한 불안을 느낀다.

이제는 변한 세상을 인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서울대 송호근 교수)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격차의 사회에서는 차이에 대한 세심한 성찰이 필요하다. 차이를 무조건 부정하지 말고 인정하는 것이다. 삶은 어차피 공평하지 않다. 자포자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관대해지자는 것이다. 남을 인정해 주자.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보고 박탈감을 느낄 게 아니라 그들의 장점을 읽을 줄 아는 마음의 훈련을 할 때 내 정신이 건강해진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상실의 정체란 것도 사실 모호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알아서 병’이 된 경우도 많다. ‘물질’보다 ‘정신’의 문제라면 그 상실을 극복할 주체는 남이 아니라 나다. 게다가 요즘은 명문대 나왔다고,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평생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격차가 커진 사회에서 격차를 숨기거나 평등만을 외치면 부작용만 부른다. 국가나 정치가들이 진폭을 줄인답시고 인위적으로 평등을 만들려고 하거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할 때 순진한 사람은 속아 넘어간다. 그리하여 ‘오해’나 ‘환상’이 깨지는 어느 순간, 좌절하고 분노하며 그럴수록 더욱 더 불평등의 나락으로 빠진다. 평등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역으로 피해자가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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