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3년 같다는 뜻으로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애태우며 기다릴 때 쓰는 표현이죠. 휴대전화 ‘스카이’로 유명한 팬택 계열 임직원들의 요즘 심정이 그렇습니다. 학수고대하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개시 결정 일자가 이달 5일로 예정됐다가 11일로 연기됐고 다시 18일로 미뤄졌기 때문이죠. 한 임원은 “입술이 타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워크아웃은 부실기업을 수술하는 것과 같습니다. 극심한 자금난에 빠진 팬택 계열은 지난해 12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워크아웃을 요청했습니다. 스스로 수술대에 누운 셈이죠.
기업이 워크아웃이란 수술을 받으려면 채권단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팬택 계열의 어려움은 보호자 1명의 사인만 있으면 되는 개인 환자와 달리 1000여 비협약채권자(제2금융권과 개인 채권자)에게서도 채무조정안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500여 관리직 직원이 밤낮, 주말을 안 가리고 전국을 누볐답니다. 경남 거제도에 사는 채권자를 만나기 위해 10시간을 달려간 직원이 있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샘 설득을 한 경우는 수도 없고요.
그 결과 지난달 30일까지 비협약채권자 99.96%의 동의를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메스를 쥔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 채권은행협의회는 내부 합의를 이루지 못해 수술 날짜를 못 잡고 있다고 하네요.
팬택 계열은 “제품 수요는 여전히 많은데 부품 살 돈이 없어서 공급을 못한다. 최소한의 ‘수혈’(신규 자금 지원)이라도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채권은행협의회는 ‘워크아웃 개시 전에는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하네요.
피(자금)가 돌지 않으니 손발 역할을 하는 협력업체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직원이 430명이던 한 회사는 이미 150명을 내보냈답니다.
채권은행협의회 처지에서 보면 연간 1200만 대의 휴대전화를 수출하는 큰 회사를 수술하는 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만큼 신중하다 보니 워크아웃 결정 시기도 늦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수술하려고 보니 환자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게 악화돼 있다면 그 의사의 때늦은 판단에 비판이 나오지 않을까요. ‘가장 나쁜 결정은 틀린 결정이 아니라 늦은 결정’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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