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섬유를 생산하는 코오롱은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한다. 잠시라도 멈추면 폴리에스테르 및 나일론 원료가 기계 안에서 굳어 버려 씻어 내는 데 큰돈이 든다. 이 때문에 회사는 파업 기미만 보여도 무조건 굴복해 노조의 요구를 100% 들어줬다.
파업과 임금 인상이 악순환하다 보니 2004년에는 퇴직충당금 4대 보험금을 포함한 임금성 경비가 근로자 1인당 연 6000만 원에 이르렀다. 중국과 죽기 살기로 경쟁해야 하는 섬유 제조업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사측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겠다 싶어 2004년 노조가 64일 파업을 해도 임금을 안 올려 주고 버텼다.
노조 안에서도 자성(自省) 움직임이 일어 변화를 바라는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은 온건파 김홍열 위원장이 작년 7월 당선됐다. 그가 합리적 노조활동에 나서자 형편이 어려웠던 회사도 고용 안정을 약속했다. 작년에 260억 원 적자를 냈던 회사가 노사 화합으로 올해 1분기(1∼3월)에 흑자로 돌아섰다. 이미 무파업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노동운동이 건전하게 바뀌면 기업도 경제도 좋아지기 마련이다. 현대중공업은 12년 무파업으로 흑자 행진을 계속하면서 ‘초우량기업의 행복’을 노사가 나누고 있다. GS칼텍스, LG필립스LCD, 한국바스프 여수공장 등의 노조가 임금 동결을 자청한 것도 오래오래 노동자 권익을 누리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어제 한 강연에서 “세계 최하위 조직력을 가진 노조가 최강의 분규를 하는 바람에 외국인 투자 축소와 고비용 문제를 낳고 있다”고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회사가 만신창이로 쓰러지고 나면 노조의 붉은 띠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상급노조의 합리적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에 이어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도 다소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코오롱 노조의 일대 변신이 양대 노총과 다른 기업 노조들에 자극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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