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마음까지 읽는 ‘아이디어’와 불가능에 도전하는 열정이 ‘상사맨 정신’이라는 게 지 사장의 얘기입니다. 대우그룹의 ‘세계 경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회장의 ‘상사맨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종합상사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수출 한국’의 견인차였습니다. 국내 제조업체를 대신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글로벌 보부상’으로 맹활약했습니다.
그 시절 ‘상사맨’의 자부심과 열정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이채욱 전 GE코리아 회장은 삼성물산 근무 시절 고철로 판매하기 위해 해외에서 사들인 폐선(廢船)이 태풍으로 침몰하는 사고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는 “내 손으로 배를 건져 낸 뒤 사표를 쓰겠다”며 폐선 인양을 마무리했고, 회사는 그에게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합니다.
1990년대 들어 종합상사의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국내 기업이 직접 수출에 나서면서 종합상사의 설 자리는 좁아졌습니다. 외환위기까지 터져 대기업 부실의 주범으로 몰렸습니다.
대우그룹은 해체됐고, 현대종합상사와 현 SK네트웍스(SK글로벌)도 부실 경영으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습니다. 화려한 성공신화가 흑백필름처럼 빛바랜 추억이 된 것입니다.
그 사이 한국 경제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최근 20년간 과거와 같은 입지전적인 성공신화가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세계적인 대기업이 탄생했는데 국내에서는 그 맥이 끊겼다는 것입니다.
19일 SK네트웍스가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습니다. 삼성물산, LG상사, 대우인터내셔널, 현대종합상사도 해외 자원 개발 등 신사업을 통해 재도약에 나섰습니다.
‘스님에게도 빗을 파는’ 열정과 아이디어로 뭉친 ‘상사맨 정신’이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기업가 정신의 본류(本流)가 아닐까요. 기업이 버려야 할 관행과 되살려야 할 정신이 무엇인지 종합상사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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