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신세대, IMF세대, 노무현세대

  • 입력 2007년 4월 26일 19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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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1993년 본보에 연재된 ‘신세대’ 시리즈의 한 대목이다. 미국에선 X세대, 일본에선 신인류로 불렸던 그들은 1970년대 안팎에 태어나 풍요 속에서 기성세대보다 먼저 컴퓨터와 해외연수를 접한 꿈의 세대였다.

대학 졸업 때의 景氣가 인생을 좌우

지난주 본보에 실린 ‘IMF세대 늦깎이 결혼 급증’ 기사는 내게 충격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뒤 대학을 졸업해 경제적 불안정을 겪은 세대가 서른아홉수를 넘기기 전에 결혼하느라 최근 3년간 혼인 건수가 늘었다는 내용이다. 곰곰 따져 보니 IMF세대가 그때 그 신세대였다.

당시 독자였던 후배는 “잘 놀고 잘 쓰면서 세상을 만만하게 보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구조조정을 당해 해외연수 중간에 귀국하거나, 신입사원 공채가 막혀 몇 년씩 고생한 친구도 있다”고 했다. 1997년 5.7%이던 청년실업률은 1998년 12.2%, 1999년 10.9%로 급증했다. 전체 실업률인 7%, 6.3%보다 높다. 청년실업이 경기 변동에 극도로 민감한 까닭이다. 운이 나빠 세상 잘못 만난 탓이라고 봐야 할까.

캐나다 토론토대의 필 오레오폴로스 교수는 “경기침체 때 대학 졸업자는 9% 낮은 초임으로 시작해 남들을 따라잡기까지 9, 10년이 걸린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1983년 청년실업률이 20%가까운 최악이었는데 이때 총리가 분배를 강조하며 정부 지출과 재정 적자를 두 배로 늘린 피에르 트뤼도였다. 캐나다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폴 오이어 교수 역시 작년에 “경영학 대학원 시절 2년의 주식 판세가 경영학석사(MBA) 20년 수입을 좌우한다”고 했다.

이쯤 되면 전도양양한 젊은이가 길게는 20년간 고생길에 들어서는 것을 운이라고만 볼 수 없다. 어떤 정권을 만나느냐는 운이라고 친대도, 어떤 정책으로 경제를 이끄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 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전문가들은 일자리 늘리는 해법을 수없이 내놨다.

1997년 외환위기는 금융자유화를 해 놓고도 금융구조 개혁엔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은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단기간에 위기를 극복한 것은 정권이 교체돼 신속히 IMF식 개혁을 마쳐서라고 미 컬럼비아대 프레더릭 미슈킨 교수는 평가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는 더 해야 할 개혁을 현저히 안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가 8% 안팎의 ‘공식’ 청년실업률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 10.2%는 외환위기 때와 맞먹는다.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치라지만 취업 준비자와 구직 포기자까지 합하면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이 논다. 세계적, 경험적으로 입증된 일자리 해법을 완강히 외면하는 정권을 만난 ‘노무현 세대’는 자칫 10년의 젊은 날을 취업문만 두들기며 보낼 판이다.

OECD, IMF, 세계은행이 수시로 내놓는 일자리 처방은 생산시장과 노동시장의 규제 완화와 경쟁 강화, 견실한 거시경제로 모아진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에서, 독일이 ‘유럽의 환자’에서 벗어난 것도 과감한 시장경제 개혁 덕이 크다.

노동유연성에 사회안전망을 결합한 ‘유연안정성(flexicurity)’ 정책으로 경제 모범생이 된 네덜란드는 아예 취업센터를 민영화했고, 취업 실적에 따라 보너스가 나온다. 우리처럼 고용지원센터 상담원 1567명부터 공무원으로 입신(入神)시킨다는 엉뚱한 정책은 귀를 씻고도 들은 바 없다.

엉뚱 해법으론 일자리 못 만든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OECD 가입 10년을 기념해 방한했던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노 정부의 ‘비전 2030’이 공공지출과 세금을 늘려 일할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또 다른 개혁을 위해 위기를 기다려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짓고도 생산과 노동시장의 규제를 고집해선 동북아 경제 허브가 될 수 없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는 자유주의는 무시한 채, 세금 뜯어 공무원만 늘리는 ‘민주복지국가’는 올바른 방향이라 할 수 없다. 만에 하나, 또 다른 위기가 닥쳐 온다면 그땐 ‘노무현 세대’가 공격에 앞장설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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