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옥션이 주최하는 미술품 경매는 열기로 가득했다. 400여 명의 구매 희망자가 몰려와 112점의 출품작 가운데 92%인 103점이 낙찰됐다. 총낙찰금액이 22억 원에 달했다. 30, 40대 직장인들은 물론 젊은 부부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와서 미술품을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꿈틀거리는 ‘삶의 질’ 수요
서울대 미대가 지난해 개교 6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60만 원 전시회’ 행사에서도 폭넓은 문화 수요가 감지됐다. 이 대학 출신들의 미술 작품을 일률적으로 60만 원씩에 판매하는 이 행사에 1만5000명이 구입을 신청한 것이다.
‘앞으로 문화예술 행사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국민이 73.8%에 이른다. 문화관광부가 실시한 ‘2006년 문화 향수 실태 조사’에서 집계된 수치다. 휴일에 집에서 TV 채널을 돌리거나 외식을 하는 낮은 단계의 여가생활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추구하는 문화생활 욕구가 확산되고 있다. 문화 수요의 빅뱅은 선진국들도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전후한 시점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시장이나 군수는 주민들이 뭘 원하는지 빨리 알아채는 사람들이다.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자치단체장이 많다. 이들이 문화행사로 마련한 지역축제는 전국에 1176개에 이른다. 1990년대만 해도 300여 개에 불과했으나 몇 년 새 급속히 늘었다.
서울시가 지난 주말 시작해 6일까지 열고 있는 하이서울페스티벌은 ‘문화 시장(市長)’을 꿈꾸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을 들이는 행사다. 예산을 지난해의 세 배인 45억 원으로 늘리면서 규모가 커졌다. ‘문화가 곧 경제’라고 말해 온 오 시장은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어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고 한다.
지역축제가 너무 많다는 지적과 함께 자치단체장들이 인기를 노린 선심성 행사라는 비판이 있지만 프랑스의 지역축제가 3만여 개, 일본이 2만여 개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가 많은 편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평소 문화 혜택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인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화 소비에서 영화 대중음악 등 일부 감성적 장르에만 관객들이 몰리는 편식(偏食) 현상이 심각한 가운데 지역축제 역시 같은 행사를 반복 제공하고 있다. 축제는 축제니까 그렇다 치고 자치단체장들이 다른 문화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얼마 전 경희대 최병식 교수 주도로 국내 박물관 실태조사가 이뤄졌다. 정식 조사로는 최초라고 한다. 조사 결과 파악된 430여 개의 박물관 수는 미국의 1만7000개, 독일의 5000개, 일본의 4500개에 비해 빈약하다. 박물관 대부분이 영세할 뿐 아니라 설립자 혼자서 어렵게 꾸려 가고 있다.
축제가 전부는 아니다
공공도서관의 열악한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빌 게이츠가 ‘도서관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술회할 정도로 도서관은 문화 인프라로서 중요하다. 그런데도 한국의 공공도서관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구 10만 명에 하나꼴이다. 인구 3만 명에 하나인 미국이나 영국(1만2000명당 1곳), 스페인(8000명당 1곳)과 비교하기조차 거북하다. 정부도 나서야 하지만 문화 시장이 되려면 오히려 이런 취약한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5월에는 지역축제가 많다. 이곳저곳 들뜬 분위기이지만 아쉬운 느낌은 축제가 끝난 뒤의 허전함 때문만이 아니다. 문화 각 장르의 고른 발전이 문화도시를 만든다. ‘가벼운 문화’의 홍수 속에서 문화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야 문화 시장의 자격이 있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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