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교실 바닥을 청소하다가 칠판에 적힌 수학 문제를 심심풀이 삼아 풀어 놓았는데 이게 그의 인생을 바꾼다.
이 학교 수학과 램보 교수는 헌팅에게 연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단, 정신과 의사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치료를 받는 조건이었다. 헌팅은 천재였지만 영혼은 불구였다. 그의 내면은 분노뿐이었다.
자신이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인생이 풀리지 않는 것이 남 때문이라고 여겼다. 내로라하는 심리치료사들이 헌팅에게 달려들었지만 궤변만 일삼는 그에게 모두 나자빠졌다.
영화 ‘굿 윌 헌팅’은 공부는 잘했지만 타인과의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헌팅이 숀(로빈 윌리엄스 분)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면서 달라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속 숀 선생님의 말과 행동은 ‘진정한 사랑’이 주는 치유의 힘이 한 인간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숀 선생님은 세상과 화해하는 법을 알지 못해 우리에 갇힌 사자처럼 으르렁대는 헌팅을 ‘연민’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뭘 느끼고, 어떤 애인지 ‘올리버 트위스트’만 보면 다 알 수 있어. 내 눈엔 네가 지적이고 자신감이 있기보다 오만에 가득 찬 겁쟁이 어린애로 보여. 우선 네 스스로에 대해 말해야 돼. 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이야.”
헌팅은 공부 재능은 있었을지 몰라도 정서는 불능이었다.
재능 있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 대한 관대함은 정도의 차는 있지만 대다수 부모에게는 공통적인 것일 게다.
문제는 공부는 잘하지만 영혼에는 구멍이 난 헌팅 같은 아이가 최근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보가 최근 보도한 ‘불감증 세대-비탈에 선 아이들’(4월 14일자)에 따르면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정서적 문제가 있다고 느껴도 공부를 잘하면 그대로 넘어가기 일쑤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요즘 모범생들은 공부와 행동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옛날의 그 모범생들이 아니다. 공부는 잘하지만 영혼은 치유를 받아야 하는 아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공부가 제일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무생물의 고정된 세상을 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실을 떠난 세상은 숨 가쁘게 변하는 생명체다.
앞의 기사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경기 가평군에서 같은 반 여자 친구를 집단 성폭행한 청소년들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고 울부짖는 여자친구에게 “우는 여자는 딱 질색”이라며 폭행을 계속했다는 대목이다.
그들은 눈앞에서 울부짖는 친구가 자기들과 똑같이 때리면 아프고 상처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로봇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감성은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에 반드시 필요하다. 더구나 갈수록 논리가 통하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더더욱 요구되는 덕목이다. 책이나 인터넷 지식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부만 하느라 영혼에 구멍이 나고 있는 아이들은 없는지 찬찬히 되새겨 볼 때다.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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