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청해서 이라크 戰線 가는 영국 왕자 해리 중위

  • 입력 2007년 5월 3일 03시 02분


영국의 왕위계승 서열 3위인 해리(22) 왕자가 조만간 이라크 전선에 투입된다. 그가 속한 육군의 블루스 앤드 로열스 연대가 교대근무차 이라크에 파견되는 데 따른 것으로 왕자 자신이 다른 장병들과 똑같이 복무하겠다고 자청했다. 소속 부대는 6개월간 파견되며, 중위인 해리 왕자는 탱크 4대와 병력 11명을 지휘하게 된다.

해리 왕자의 이라크 복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라크 무장단체가 그에 대한 공격 예고까지 해, 영국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조기 사퇴 결정을 초래한 영국의 이라크전(戰) 개입을 왕실이 지지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해리 왕자가 가겠다고 한 것은 국가안보에 왕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전통에 따른 것이다.

영국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실천은 유명하다. 모병제인데도 왕실의 남자들은 모두 군 복무를 자원한다. 해리 왕자의 삼촌인 앤드루 왕자도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때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민주주의의 원조’인 영국에서 왕실이 건재하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감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수사가 진행 중인 병역특례 비리나, 한화 김승연 회장의 폭행사건도 그런 예다.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가 지난해 12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회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83.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2002년 서해교전 등 군 작전과 해외파병 도중 순직한 장병들의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으나 분위기가 침통했다고 한다. 동티모르에서 실종된 김정중 병장의 형은 “미국은 6·25전쟁 전사자의 시신을 지금도 찾고 있는데 국방부는 동생의 시신을 찾고나 있는지 말씀 좀 해 달라”고 따졌다.

북한에 갇힌 6·25전쟁 국군포로 548명을 비롯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 목숨을 잃은 장병과 유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이 정도이니 부끄럽다. 사회발전의 역사와 과정이 나라마다 다르긴 해도 해리 왕자의 경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도층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하고, 정부는 제 국민을 끝까지 보호하고 챙겨야 제대로 된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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