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금리 66%의 진실

  • 입력 2007년 5월 3일 19시 43분


대부업체를 찾은 것은 정확히 8년 만이다. 사채업자의 음습한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착각이다. 영업점은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며졌고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직원이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1999년 4월에 취재차 들렀던 일본계 대부업체 1호 ‘A&O 크레디트’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금리가 높다는 점만 빼면 여느 은행의 지점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업체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존재가 됐다. 케이블 TV를 켜면 인기 연예인이 모델로 등장하는 대부업체의 CF가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30∼40일 무이자, 신속 정확한 대출 등 현란한 광고 문구가 돈이 궁한 서민들을 유혹한다. 신용이 좋으면 저금리로도 돈을 빌려 준다지만 실제로는 연 50∼60%대의 고금리로 대출이 이뤄진다. 하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우량 고객이라면 가까운 은행을 놔두고 굳이 대부업체를 찾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과거의 사채업을 양성화한 대부업체가 등장한 지 10년이 채 안 됐지만 등록된 대부업체는 1만7500여 곳에 이른다.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서민층에겐 이미 대부업체가 급전을 융통하는 창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부업체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일부 대형 업체가 지난해 1000억 원 가까운 흑자를 냈다는 소식도 이미지 개선엔 오히려 역효과다. 폭리를 막기 위해 이자상한선(연 66%)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인위적인 금리 제한이 상당수 대부업체를 음성화시켜 연 200∼300%의 불법 사채시장을 키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부업체의 금리를 둘러싼 논쟁엔 핵심이 빠져 있다. 당장 급전이 아쉬운 서민과 신용불량자들의 ‘금융 복지’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빈곤층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대기업과 은행의 금고엔 돈이 넘쳐 나지만 서민들의 지갑엔 돈이 말랐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사람은 은행과의 금융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축은행과 캐피털업체에서도 외면당하면 갈 곳은 등록된 대부업체나 무허가 사채업자밖에 없다.

대부업체에서 가장 흔한 유형의 이용자는 ‘300만 원을 연 60%의 금리로 6∼8개월간 빌려 쓰는 고객’이라고 한다. 유한계층이 하룻밤 유흥비로 탕진하는 돈이 없어 턱없이 비싼 이자를 감수하고라도 대출받아야 하는 사람이 줄잡아 수백만 명에 이른다.

누구보다도 반성해야 할 대상으로 금융당국과 은행을 지목하고 싶다. 공적자금으로 기사회생한 은행이 거액 자산가를 상대로 한 ‘부자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동안 서민들은 은행 창구에서 밀려났다. 대부업체는 고금리 무담보 신용대출을 통해 서민의 금융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금융당국의 감독에서 열외다. 대부업체를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방치한 당국자들은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대부업체가 승승장구하는 현실은 한국 제도권 금융 시스템의 실패이자 양극화가 빚어 낸 우울한 시대상의 반영이다.

외면하고 감춘다고 해서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불편하더라도 금융 소외계층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이들의 처지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친 발길로 급전을 찾아 헤매는 우리의 이웃이 좀 더 마음 편히, 좋은 조건으로 돈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원재 특집팀 차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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