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존재가 됐다. 케이블 TV를 켜면 인기 연예인이 모델로 등장하는 대부업체의 CF가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30∼40일 무이자, 신속 정확한 대출 등 현란한 광고 문구가 돈이 궁한 서민들을 유혹한다. 신용이 좋으면 저금리로도 돈을 빌려 준다지만 실제로는 연 50∼60%대의 고금리로 대출이 이뤄진다. 하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우량 고객이라면 가까운 은행을 놔두고 굳이 대부업체를 찾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과거의 사채업을 양성화한 대부업체가 등장한 지 10년이 채 안 됐지만 등록된 대부업체는 1만7500여 곳에 이른다.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서민층에겐 이미 대부업체가 급전을 융통하는 창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부업체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일부 대형 업체가 지난해 1000억 원 가까운 흑자를 냈다는 소식도 이미지 개선엔 오히려 역효과다. 폭리를 막기 위해 이자상한선(연 66%)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인위적인 금리 제한이 상당수 대부업체를 음성화시켜 연 200∼300%의 불법 사채시장을 키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부업체의 금리를 둘러싼 논쟁엔 핵심이 빠져 있다. 당장 급전이 아쉬운 서민과 신용불량자들의 ‘금융 복지’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빈곤층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대기업과 은행의 금고엔 돈이 넘쳐 나지만 서민들의 지갑엔 돈이 말랐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사람은 은행과의 금융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축은행과 캐피털업체에서도 외면당하면 갈 곳은 등록된 대부업체나 무허가 사채업자밖에 없다.
대부업체에서 가장 흔한 유형의 이용자는 ‘300만 원을 연 60%의 금리로 6∼8개월간 빌려 쓰는 고객’이라고 한다. 유한계층이 하룻밤 유흥비로 탕진하는 돈이 없어 턱없이 비싼 이자를 감수하고라도 대출받아야 하는 사람이 줄잡아 수백만 명에 이른다.
누구보다도 반성해야 할 대상으로 금융당국과 은행을 지목하고 싶다. 공적자금으로 기사회생한 은행이 거액 자산가를 상대로 한 ‘부자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동안 서민들은 은행 창구에서 밀려났다. 대부업체는 고금리 무담보 신용대출을 통해 서민의 금융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금융당국의 감독에서 열외다. 대부업체를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방치한 당국자들은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대부업체가 승승장구하는 현실은 한국 제도권 금융 시스템의 실패이자 양극화가 빚어 낸 우울한 시대상의 반영이다.
외면하고 감춘다고 해서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불편하더라도 금융 소외계층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이들의 처지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친 발길로 급전을 찾아 헤매는 우리의 이웃이 좀 더 마음 편히, 좋은 조건으로 돈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원재 특집팀 차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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