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엔 불교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이 해인사로 찾아간 박 씨에게 “사소취대(捨小取大·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함) 하시라”고 화두를 던졌다. 그 몇 시간 뒤에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만난 박 씨와 이 씨는 1시간 가까이 가시 돋친 설전만 벌이다 인사도 않고 등을 돌렸다.
권력의지(權力意志)가 부족하면 대권을 못 쥔다는 말이 맞아 보인다. 정치의 구정물에 발 담그기를 싫어하면서 꽃가마나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리 무늬가 좋아도 고지에 올라서지 못한 사례가 많다. 이, 박 양인은 그런 유형은 뛰어넘은, 좀 상스럽게 말해서 독한 사람들 같다. 4일의 회동을 취재한 기자들 사이에선 ‘어느 쪽이 더 독한가’에 대한 설왕설래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권력의지만으로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1, 2%에 그치는 범여권 사람인들 열망이 부족해서 죽을 쑤는 건 아닐 터다. 국민의 인지도(認知度)는 80% 안팎인데 지지도는 계속 3%에도 못 미친다면 ‘포기하라’는 민성(民聲)으로 받아들여야 정상이지 싶다. 그런데도 꿈을 접지 않으니 집념 하나는 인정할 만하다. 이런 사람보다야 이, 박 양인이 훨씬 유리한 토대 위에 있음이 분명하다.
‘나밖에 없다’는 傲慢 안 통해
문제는 대통령을 한 사람만 뽑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둘 다 ‘당신일 수도 있다’는 마음의 여백은 없이 ‘오직 나’라고만 생각하는 게 화근이다. ‘누구든 먼저 깨고 나오는 사람은 역사의 죄인’이라는 식의 얘기를 아무리 해 봐야 씨도 안 먹힐 것이라는 소리가 한나라당 주변에서 들린다.
양측 캠프 사람들의 이기심과 투기심리도 두 주자의 ‘마음 비우기’를 어렵게 만든다. ‘줄을 섰으니 나도 전리품을 챙겨야지’ 하는 집착 때문에 여유를 잃고 충성경쟁을 벌이며 음모적 수법까지 동원해 주자를 오도(誤導)하는 양상이다. 시장 전체가 흔들려도 내가 투자한 종목만 대박이면 된다는 식이다.
어느 주자 쪽이나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시며 근원을 생각함)이 필요하다. 40%대, 20%대의 지지율이 고스란히 자신들의 득점력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진 10년 좌파정권을 더는 연장시키지 않겠다는 다수 민의(民意)가 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한나라당일 뿐이다. 그 울타리 안에 몇 가지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인 이 씨가 존재하고, 아버지의 후광과 원칙 중시 이미지가 결합된 박 씨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나 때문에 당이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또한 착시다. 노 정권이라는 반사체(反射體)가 잠시 잊힌 순간에 실시된 4·25 재·보선에서 이, 박 양자는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힘이 되지 못했다. 2005년 4월 이후 4차례의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얻은 40 대 0의 압승이 박근혜 효과 이전에 반노(反盧) 반여(反與)의 결과였음을 시사한다. 이번 재·보선 이전에 50%까지 육박하던 이 씨에 대한 지지율에도 여권 대항마가 결정되지 않은 데 따른 거품이 끼어 있다고 봐야 한다.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바라는 일각에선 8월로 잡힌 당 경선을 대선 직전으로 늦추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정치경험으로 볼 때 경선시기를 더 늦추면 갈등과 반목이 더 심해질 뿐”이라고 본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보다 12일 이른 4월 27일에 일찌감치 확정됐지만 그 자체가 선거전략상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민심은 판 깨는 사람부터 버릴 것
경선을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씨와 박 씨 가운데 한 사람이 선거에 임박해 사퇴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부패와 분열을 응징한 4·25 민심을 한나라당이 수용해 행동으로 변화한다면 꼭 두 사람이 아니더라도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 좌파정권 종식을 바라는 민심을 볼모로 잡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에 빠져 판을 깨는 사람이 있다면 민심은 그쪽부터 버릴 것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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