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정치권의 막말 競演

  • 입력 2007년 5월 9일 03시 00분


“같은 술이라도 잘 거르면 청주가 되고 막 거르면 탁주가 된다. 막 걸렀다고 해 막걸리다. 그래서 막일꾼들은 막노동을 하다가 막사발로 막걸리를 마시고 막김치로 안주를 삼는다. 그리고 막담배를 피우고 막신발을 신고 나간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막자가 정신영역으로 옮겨 와 말이나 행동에 붙으면 사정은 심각해진다. 그래서 시인 워즈워스는 ‘생활(물질)은 낮게 정신은 높게’라는 시구를 남겼다….” 이어령 씨가 몇 년 전 어느 신문에 쓴 글의 일부다.

▷열린우리당의 진로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 사이에 그제 또 막말이 오갔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두 사람을 ‘당신들’이라고 부를 만큼 격정을 드러냈다. 김 전 의장과는 서로 ‘잔꾀 정치’를 한다고 비난했다. 이른바 ‘친노(親盧)’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한 술 더 떴다. 정, 김 두 사람을 겨냥해 ‘잡동사니들이 살모사 정치, 떴다방 정치를 하며 얄팍한 잔머리를 굴린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한 나라의 정치 엘리트들로서의 품격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나마 동지였음에도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다. 노 대통령은 이 글에서 ‘대통령이 아닌 정치인’ 자격으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정치인은 막말을 해도 괜찮다는 건가, 아니면 ‘계급장 떼고 맞장 뜨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노 대통령은 유력 신문들을 ‘불량상품’이라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보따리장수’라고 한 적도 있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국민의 언어생활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오염시킨다. 우드로 윌슨 전 미국대통령은 저서 ‘연방의회정치론’에서 “입법보다 더 중요한 의회의 기능은 정치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이란 것에 대해 피타고라스는 ‘정신의 호흡’이라고 했고, 랠프 에머슨은 ‘남 앞에 자화상을 그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부터 TV의 어린이날 특집프로에 출연해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기 전에 어린이들이 따라 쓸까봐 겁나는 말을 삼갔으면 좋겠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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