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머나먼 ‘가고 싶은 군대’

  • 입력 2007년 5월 13일 20시 02분


20여 년 전 얘기다. 몇 주일 전 입대한 동생이 사고를 당했다는 기별이 왔다. 최전방 포병으로 배치돼 포(砲)를 닦다가 다리를 다쳤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옛 38선을 넘어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흙먼지 자욱한 비포장 산길을 돌고 돌아 4, 5시간 만에 도착했다.

부대 정문에서 면회 신청을 한 지 6시간 만에 동생이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지급받은 군복과 군화는 고참병에게 빼앗겼는지 남의 것이었다. 인근 다방에 앉자마자 동생은 “형, 나 좀 살려줘” 하며 매달렸다. 편한 부대로 빼 달라는 얘기였다. 가슴이 미어졌다. 자신이 없었지만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형제는 여관에서 뜬눈으로 새웠다. 시커멓게 때가 낀 러닝셔츠 차림의 동생은 거듭 애걸했고 형은 ‘저러다 사고라도 내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영외 거주자 통근트럭 맨 끝자리에 겨우 엉덩이 한쪽만 걸친 채 귀대하는 동생을 보면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동생도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다행히 동생은 바로 후송돼 치료를 받은 뒤 그 부대에서 만기제대해 지금껏 훌륭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군대에서 이 정도는 약과지만 가족은 간이 녹아내린다. 각종 사건 사고로 숨지는 장병 수는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작년 한 해에만도 128명(자살 69명 포함)이 죽었다. 부상자는 훨씬 많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2006년도 국방백서 최신판은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를 병영문화 비전으로 제시했다. 지금의 병영은 ‘가고 싶지 않은 군대, 보내고 싶지 않은 군대’라는 고백인 셈이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병역특례 비리는 개인의 책임에 앞서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병역의무를 기피할 수 없도록 물샐 틈 없는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병역의무 이행에는 반드시 사회적 대가도 필요하다. 정신적 가치인 명예일 수도 있고 실리적 혜택일 수도 있다. 그래야만 군복무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군대 가는 사람만 바보’ ‘군대생활은 썩는 것’이라는 자조(自嘲)는 결국 정부의 작품이다.

‘산업기능요원’ 서류 하나만 잘 꾸미면 편하게 집에서 봉급도 받고 학업도 계속할 수 있는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병역 필’ 도장을 받고 이 사회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산업체들은 인력을 제공받으면서 임금을 주기는커녕 수천만 원의 사례비도 챙길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기다.

감사원 조사에선 공익근무요원 547명이 ‘행정착오’로 병역 면제된 사실이 밝혀졌다. 착오라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병무청 공무원의 공범(共犯) 여부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최근 장병 신체검사 인원은 매년 30만 명 선으로 줄어 이 중 약 90%가 현역 입영 판정을 받는다. 10% 정도인 약 3만 명이 병역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셈이다. 이 정도조차 관리하지 못한다면 병무청은 존재 의미가 없다.

육해공군 68만 명이 2020년엔 50만 명으로 줄어든다. 그 대신 사회봉사 개념의 사회복무제도가 새로 생기면 또 다른 ‘병역특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작년 9월 취임 초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제 병무 비리를 끊을 차례다”고 큰소리친 강광석 병무청장의 답변이 궁금하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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