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석가탑은 742년에 완성됐다.” 문화재위원인 박상국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실장은 최근 ‘신라사학보 9집’에 기고한 글에서 “석가탑 중수기(重修記·수리 내용을 적은 글·1024년)에 따르면 석가탑 완공 연대가 742년임이 확실해졌다”며 “따라서 석가탑에 봉안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적어도 742년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학계가 추정한 석가탑 완성 연대인 751년보다 9년 앞서는 것. 석가탑 완공 시기는 국내 최고(最古) 목판본인 다라니경의 제작연대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이 석가탑 중수기를 공개한 뒤 석가탑의 완성 시기가 혜공왕대(765∼780년대)라는 해석도 나오면서 석가탑 창건 연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된 터라 박 위원의 해석은 학계의 관심이 되고 있다.
중수기에는 ‘天寶元年壬午元成立(천보원년임오원성립)’이라고 적혀 있다. 석가탑이 천보원년(742년)에 세워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중수기를 해독한 연구자들은 이 기록 뒤에 ‘惠恭大王矣代(혜공대왕의대)…成立(성립)’이 뒤따른다는 점을 들어 석가탑을 742년에 짓기 시작해 혜공왕대에 완성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박 위원은 “742년에 석가탑이 세워졌다는 표현이 분명히 나와 있고 이어 나오는 혜공왕대는 정확한 연대가 언급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탑의 창건연대를 정확히 쓰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 박 위원은 “혜공왕대는 석가탑 완성 후 최소 23년이 지난 때라 석가탑 주변의 지반이 내려앉거나 탑이 기울어져 탑을 보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석가탑 보수기록인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1038년)’에도 ‘천보원년임오원개창(天寶元年壬午元開,)’이라는 기록이 있다. 중수기와 중수형지기의 기록으로 볼 때 석가탑이 742년에 완성됐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게 박 위원의 주장이다.
그는 “석가탑 건립부터 중수기가 작성된 1024년까지 285년이 걸렸다는 기록으로 볼 때 석가탑 건립이 시작된 때는 740년경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박 위원의 검토 결과 중수기와 중수형지기의 필체는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중수기가 훼손되거나 1024년 당시 봉안하지 못해 1038년 중수형지기를 봉안할 때 중수기를 함께 필사해 봉안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남동신 교수 “석가탑 중수기는 다보탑의 것” 주장
한편 덕성여대 사학과 남동신 교수는 최근 한국역사연구회 웹진에 기고한 글에서 “중수기에 적힌 석탑 보수용 부재(部材) 명칭과 모양으로 볼 때 석가탑에서 발견된 중수기는 다보탑 중수기로 보인다”고 밝혀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중수기에는 ‘앙련대(仰蓮臺) 화예(花예) 통주(筒柱)’가 등장한다. 남 교수는 통주를 다보탑 상층부의 대나무 모양 돌기둥 8개로, 통주가 떠받치고 있는 활짝 핀 연꽃 모양의 연화대좌는 앙련대로 봤다. 꽃술을 뜻하는 화예는 탑 3층의 8각 옥개석을 떠받치는 꽃술 모양의 기둥이라고 해석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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