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열라고 노무현 정부를 훈수하고 있다. 독일을 방문 중인 그는 “남북 정상회담은 6자회담과 병행할 필요가 없으며 더욱이 6자회담보다 뒤로 미뤄선 안 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실현하지 못하고 물러나면 많은 점수를 잃을 것”이라고도 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도를 넘는 간섭이다. 강압처럼 느껴질 정도다.
DJ가 정작 태도 변화를 촉구해야 할 대상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다. 미국은 그동안 DJ의 주장대로 대북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통해 2·13합의를 이끌어냈고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 자금 문제도 크게 양보했다. 그런데도 북의 책임 회피로 6자회담은 한 치의 진전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 북에는 입도 벙긋 안하면서 노 정부에 정상회담만을 채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국익 면에서나 온당한 처신이 아니다.
DJ의 정상회담 집착이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햇볕정책을 지켜줄 세력에 유리한 판을 벌여 주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는 것이 세간의 의구심이다. 사실이라면 노욕(老慾)일뿐더러 핵문제 해결이나 정치 발전, 어느 쪽에도 백해무익한 일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 대사는 어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남북 화해와 6자회담의 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회적으로 남북관계의 속도 조절을 강조한 발언이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들도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는 6자회담의 진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북핵이 온존한 상태에서의 남북 화해는 모래성(城)이나 다름없다. 정상회담이든 뭐든 남북관계는 6자회담과 속도를 맞추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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