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유홍준 式생각’

  • 입력 2007년 5월 19일 03시 01분


“영릉(寧陵)의 수복방(守僕房)은 능침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데 불을 내어 다 태웠으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입직한 수호군 등이 조심하지 않아 불을 냈으므로 가두어 다스리고, 참봉은 무겁게 추고하도록 하소서.” 조선왕조실록은 현종 11년(1670년) 예조가 이렇게 아뢰니 상(上·임금)이 따랐다고 적고 있다. 영릉은 당시 동구릉(東九陵·경기 구리시)에 있던 효종대왕의 능. 수복방은 관리인 숙소일 뿐인데 그곳의 화재도 이렇게 엄하게 다스렸다.

▷병자호란 뒤 19세에 청나라로 끌려갔다 27세가 돼서야 돌아온 효종과 선양에서 낳은 ‘적자(嫡子) 외아들’ 현종은 유달리 부자(父子)의 정이 깊었다. 그래선지 현종실록을 보면 영릉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수복방에 불이 나기 10년 전인 현종 1년에는 ‘능의 석물(石物)들이 내려앉고, 정자각 기와의 색이 붉어졌다’ 하여 영릉 관리 책임자인 병조와 형조판서 등 11명이 의금부에 하옥되고, 좌의정까지 “함께 죄를 논해 달라”고 대죄한다. 현종은 결국 부왕의 능을 여주로 옮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15일 여주에서 ‘세종대왕 탄신 610돌 숭모제’를 연 뒤 지역구 의원인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과 군수 등 30여 명을 초청해 영릉 재실(齋室) 바로 앞에서 ‘숯불-버너 오찬’을 벌였다. 취사도구 및 인화물질 반입을 금지한 문화재청 훈령을 위반한 것인데도 유 청장은 “제례를 지낸 뒤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몇백 년 된 관행”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몇백 년 된 관행이라니! 지금이 조선시대이고, 그가 임금이라도 된단 말인가.

▷유 청장이 올해 신고한 재산 30억5000만 원 중 현금 16억8795만 원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을 포함한 저서 인세 수입이라고 한다. 그만큼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그 자신도 책머리에 “사랑의 감정으로 답사(踏査)했다”고 밝혔다. 그런 사람이 조선조 왕릉 재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영릉 재실 앞에서 LP가스통에 숯불까지 갖다놓고 불 피우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고도 잘못을 호도한다. 음식 냄새보다 그 위선(僞善)의 악취가 더 역겹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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