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월드시리즈 2차전. 클레먼스의 공에 피아자의 방망이가 산산조각이 나더니 일부가 클레먼스 쪽으로 날아갔다. ‘피아자의 복수일까’라고 생각할 무렵 클레먼스는 부러진 방망이를 집어 들더니 피아자를 향해 던져 버렸다.
사실 투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타자를 맞힐 수 있다. 순간에 날아오는 공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타자는 기껏해야 마운드를 향해 달려나갈 뿐이다. 재일동포로 일본에서 최다 안타(3085개)를 기록한 장훈 씨는 1루수 쪽으로 번트를 댄 뒤 투수가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면 발을 밟아 버리는 식으로 복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복수는 역시 실력으로 응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요미우리 이승엽(31)은 역시 대단한 선수다.
18일 주니치와의 경기 6회 에이스 가와카미 겐신의 2구째 직구는 이승엽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이승엽은 화들짝 놀라 나동그라졌다. 3구째 직구도 무릎 쪽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다가서 4구째 커브를 150m짜리 대형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그 직후 가와카미의 허탈해하는 표정이란.
예전에도 그랬다. 이승엽은 삼성 시절이던 2003년 LG 서승화와 빈볼 시비 끝에 주먹다짐을 벌였다. 사건 후 처음 서승화와 다시 만난 8월 22일 이승엽은 135m짜리 대형 홈런을 날렸다.
이승엽은 그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아시아 홈런 신기록(56개)을 세웠고, 2002년에는 최종전 연장전에서 홈런을 쳐 단독 1위에 올랐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선 9회 이상훈을 상대로 동점 3점 홈런을 쳤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일본전에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
순하게만 보이는 이승엽의 가슴 어디에 그 같은 독기와 강단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극한의 긴장을 이겨 내고 있기에 그는 진정한 스타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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