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인호]‘거품 한국’에 미래 있겠나

  • 입력 2007년 5월 23일 03시 00분


우리 한국에 대해 오래전부터 우호적 관심을 가져 온 외국 친구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사회가 아주 많이 변했고 믿기 어려운 일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우선 비싼 물가와 한국인의 씀씀이에 그들은 질린다. 벼락부자들의 사치와 낭비는 둘째 치더라도 정부가 돈 쓰고 일반 서민층이 먹고 입고 노는 모습만 봐도 한국이 국민소득 2만 달러도 넘지 못하는 나라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아마도 외국인 방문객이 보지 못하는 것은 국민 개인당, 그리고 국가 전체에 빚이 얼마나 크고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청년실업률이 얼마나 높은가 하는 점일 것이다. 특히 사교육비 지출로 가계가 휘는 모습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외국 친구들은 문화나 스포츠 분야 등의 비약적 발전에 감탄한다. 세계적 수준의 연주가들이 줄이어 나오고, 여자 골프 같은 특정 스포츠 분야에서는 한국인의 득세에 대한 역작용을 염려할 정도가 되었다. 기업뿐 아니라 다른 전문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계의 이름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나 외국인 관찰자들을 정말 놀라게 하는 것은 아직도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세계인과의 교감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게 될 때다. 우리 한국인은 이제 사업, 이민, 여행 또는 유학을 위해 세계를 누비지만 외국인과 긴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대학교수나 정치지도자 가운데도 극히 드물다. 외국어 구사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외부세계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국민 모두 씀씀이 헤퍼

최근 문제가 된 공기업 감사들의 외유에서 드러난 것처럼 시찰이나 세미나를 빙자해 단체로 해외여행을 하는 공직자가 상당히 많아 그들에게 시달리는 외국의 상대 기관들이 소요 비용 보상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있지만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배울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배우려는 자세는 보기 어렵다.

외국에 개인적 인맥을 갖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국제관계 운영능력은 예전보다도 후퇴한 면이 없지 않다. 오죽 통로가 없었으면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 특사로 북한을 접촉하려 했던 안희정 씨가 정체도 분명치 않은 중국주재 중개인을 통해 일을 추진하려 했을까.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외국 친구들이 무엇보다도 놀라워하는 것은 우리의 대북 인식과 대북 관계에서 드러나는 안이함이다. 국민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도 못하는 북한이 선군(先軍)정치를 공공연히 외치고 이제는 핵으로 세계를 협박하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지원을 하지 못해 안달하며 대한민국을 지켜 준 빗장들을 하나하나 스스로 풀고 있다.

핵으로 위협하는 상대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북한의 요구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지불하는 지원금이나 값비싼 일회성 행사에 쏟아 붓는 돈을 대기 위해 화수분이라도 있단 말인지 그들은 의아스러워 한다.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는 점에서는 국민 대다수도 정부와 마찬가지라는 점에 대해 그들은 특히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오죽하면 중국공산당의 간부급 학자가 북한은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으로 계속 한국을 협박하면서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할 필요를 느꼈을까.

거품 빠진 나라 생각하면 암담

한마디로 지금 우리 한국은 거품과 환상에 가득 차 있는 사회라는 이야기다. 집권에 성공한 과거 민주화 세력은 보상을 챙기는 동시에 평화와 민족통일 세력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그들은 이제 민주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묻지 않으며, 자신들이 서 있는 땅이 꺼지고 있는 것도 감지하지 못하면서 국민 세금으로 북한 정권에 선심 쓰기에 바쁘다. 그리고 과거 대한민국을 지키며 경제대국으로 발전시켜 온 주역들은 이제 원로로 존경받으며 귀한 자문역으로 추대받기는커녕 거리의 데모꾼으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으니 국가적 낭비와 거품치고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일개미로 사는 사람들의 삶만 더욱 고달프고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이 거품과 환상이 깨질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인호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석좌교수 poso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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